▲ 유제봉 대전대 전 사무처장 |
걷기운동을 하다보면 여러 진풍경들을 만나볼 수 있다. 우선은 약 20%정도가 지체 부자유자들이다. 그리고 걷는 타입도 제각각이어서 얼른 보기엔 그냥 쉽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리 굽어진 할머니들을 비롯해서, 정반대로 노년일수록 팔은 뒤로 제켜지고 배는 앞으로 나오며 발은 팔자형으로 걷는 이들도 있다. 어떤 할머니는 걷기가 힘겨우신 듯 빈 유모차를 끌고 나와 거기에 의탁하며 걷다가, 피로하면 앉았다가를 반복한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든 사람들이 운동장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다는 점이다.
지체 부자유자 중에 어느 할머니의 경우, 뇌질환의 영향 탓인지 반신불수의 몸을 이끌고 운동장을 돌고 계신다. 운동장에 나오실 때에는 반드시 아들인 듯한 건장한 사람이 부축해 운동장으로 나오시곤 한다. 그것도 꼭두새벽에 말이다. 모자지간의 정과 아들의 효심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모습이다.
요즘 모성 본능은 살아있다지만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효심은 점점 옅어지는 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세태의 변화일 테지만 매일같이 부자유스런 어머니에게 베푸는 효심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마땅히 본 받아야 할 듯싶다. 물론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할일도 있으려니와 매일 같이 마다하지 않고 모친을 위해 희생적으로 효심을 베푼다는 것은 보통의 의지 가지고는 해내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여기 어떤 가난하게 살던 아들이 형편이 어려워 요양원에 어머니를 버리다시피 했다는 안타까운 경우를 소개하고자 한다. 죄책감을 느낀 아들은 생활고를 비관해 먼저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지만, 그 비운의 소식을 모른 채 그 어머니가 버리고 간 자식을 원망하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식의 처지를 더 이해하며 요양원에서 아들에게 보낸 어느 어머니의 편지 한 통을 여기에 소개해 보기로 한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미안하구나 아들아. 그저 늙으면 죽어야 하는 것인데 모진 목숨, 병든 몸으로 아직도 이렇게 살아 네게 짐이 되는 구나. 여기 사는 것으로도 나는 족하니 내 걱정은 하지도 마라. 그렇게 일찍 네 애비만 여의치 않았더라도 땅 한 평 남겨 줄 형편은 되었을 터인데 못나고 못 배운 주변머리로 짐 같은 가난만을 네게 물려주었구나.
내 한입 덜어 네 짐이 가벼울 수만 있다면 어지러운 아파트 꼭대기에서 새처럼 갇혀 사느니 친구도 있고, 흙도 있는 여기가 그래도 나는 족하고 천국 같구나. 내 평생 네 행복 하나만을 바라고 살았거늘 말라비틀어진 젖꼭지 파고들던 손주녀석 보고픈 것쯤이야 마음 한번 삭여 참고 말면 되지. 혹여 에미 혼자 버려두었다고 마음 상하지 마라.
네 녀석 착하디착한 심사로 에미 걱정에 네 마음이 다칠까 걱정이다. 삼시 세끼 잘 먹고, 약도 잘 먹고 있으니 에미 걱정일랑 아예 말고 네 몸 건사나 잘 하거라. 살아생전에 네가 가난 떨치고 떵떵거리며 살아 보는 것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은 없다. 네 곁에서 짐이 되느니 너 하나 행복할 수만 있다면 여기가 지옥이라도 나는 족하다. 부디 행복 하고 잘 살거라. 에미로부터….'
아무리 읽고 또 읽어봐도 눈시울이 적셔지는 어느 어머니의 가슴 찡한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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