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근익 대한건축사협회 대전건축사회장 |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마당문화가 발달했다. 서양의 문화가 아고라(agora)나 포럼(forum)과 같은 광장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광장이란 개념의 공간은 없었다. 광장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특별한 목적성을 갖는 공간이다. 조경시설물을 최소화해 공원과 구분한다. 군중이 모이고 목소리를 내는 참여의 공간이다. 광장에 개인은 없다. 개인은 한낮 군중의 일부일 뿐이다. 그 일부로서의 참여가 상황에 대한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공용의 공간이다.
반면에 마당은 어떠한 공간인가. 마당의 사전적 의미는'집의 앞뒤에 닦아놓은 단단하고 평평한 땅'으로 돼있다.보통 한 집안의 소유이나 더러는 마을의 공동소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마당은, 생산·작업, 정서, 공간의 분리를 위한 기능 및 의식(儀式)·채광·통풍·통로를 위한 기능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농촌 민가의 마당은 안마당과 뒷마당으로 구분되는데, 안마당은 주로 작업에 편리하도록 동선이 짧고 평평한 바닥에 단단하게 다져진 마당으로 구성되고, 뒷마당은 부엌과 직결되는 장독대와 우물을 가진 식생활의 원천적 기능을 가진 곳으로 주거생활의 저장·공급·정서를 이루는 기능을 수행한다.
마당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이고 마을사람끼리 만나는 공간이며 외출할 때에 거쳐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집안의 대소사나 마을의 행사가 있을 때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축제의 장소이기도 하다. 봄이면 어미닭이 병아리를 몰고 다니며 먹이활동을 하고 바둑이가 처마 밑 마당 한쪽에서 봄 햇살을 만끽하며 낮잠을 즐기던 공간이다.
여름이면 사랑채 그늘 아래 멍석을 깔아놓고 동네꼬마들이 모여앉아 방학숙제를 하는 공용도서관의 역할까지 하던 곳이다. 또한 농작물을 타작하고 말리던 곳이 마당이다. 겨울이면 마당은 동네 꼬마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팽이치기, 자치기, 제기차기는 물론 여자아이들의 고무줄놀이에 이르기까지 그 용도는 실로 다양하다 하겠다.
마당은 소리의 차단성능이 뒤떨어진 전통가옥에서 안과 밖의 시간적, 공간적 완충역할을 했다. 이렇듯이 우리는 전통적으로 마당이라는 공간을 통해 안과 밖, 나와 타인이 만나고 소통하는 문화를 가졌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에 집안의 마당은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추었다. 거대한 아파트촌에서 동네나 마을의 개념은 희미해지고 도로는 단지 자동차를 위한 공간일 뿐이다. 우리는 마당을 잃어가고 있다. 대신 정원과 광장을 얻었다. 공공성은 광장을, 개별성은 정원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광장은 '광장 알레르기'로 인해 소통의 장으로서의 역할에 한계를 노출하고 말았다. 대신에 거리로 모이는 거리문화를 만들었다.
도회지의 마당은 이미 사라졌다. 전원생활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이 마당에서의 신명나는 놀이보다는 푸른 잔디가 잘 가꿔진 정원에서 벌이는 서구식 가든파티를 선망하고 있다. 정원에는 공공성이 없다. 정원은 소통이 아닌 단절의 공간이다. 마당 특유의 서정성이 없다. 잘 가꿔진 정원은 그 조밀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공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를 주지 못한다.
우리는 산업화 이후 사라져버린 우리의 것들을 안타까워할 여유조차 없이 달려왔다. 문득 돌아보니 어느새 마당이 있어야할 자리를 잔디정원이 대신하고 있다.
잔디는 죽은 이의 묘소에만 심어온 조상들께서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안타깝게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양동마을에나 가야 우리의 마당을 구경할 수 있다. 상실의 시대에 사라져가는 것 하나, 붉은 고추가 널려있는 '황토마당'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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