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 등 국정혼란, 동기 보다 방법론의 문제"

"세종시 수정 등 국정혼란, 동기 보다 방법론의 문제"

<창간 59주년 특별 대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 승인 2010-08-31 20:45
  • 신문게재 2010-09-01 3면
  • 대담=송명학 편집국장대담=송명학 편집국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그에게는 아직도 항상 ‘여권의 장자방(張子房)’, ‘한나라당의 책사(策士)’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는 지난 2004년 16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를 공식 은퇴 했지만, 현 정부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청와대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하마평에 오르내릴 정도로 여권 내에서는 ‘전략기획통’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본보는 창간 59주년 특별대담으로 수십년간 권력의 심장부에서 ‘방향타’역할을 한 그를 만나, 대한민국의 현재를 진단하고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리더십 등에 대한 탁견을 들어보았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있는 한국지방발전연구원에서 만난 윤 전장관은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거침없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녹아있었다.

그는 대담에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대통령의 동기 자체를 의심해서는 안된다”면서도 국정 운영 상의 방법론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어려서 부터 중도일보를 접해 왔는데, 59주년이라는 것을 보니 새삼 나이 먹은 것이 실감이 난다”면서 중도일보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가운데)이 중도일보 창간 59주년을 기념해 본사 송명학 편집국장 등과 함께 대담을 나누며, 한국정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지영철 기자
▲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가운데)이 중도일보 창간 59주년을 기념해 본사 송명학 편집국장 등과 함께 대담을 나누며, 한국정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지영철 기자

- 중도일보가 창간 59주년을 맞이했다.

▲어려서부터 중도일보를 접해왔는데, 창간 59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새삼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그간 참 험난한 세월이었다. 중도일보가 그 세월을 잘 헤쳐 온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그 노고를 치하드린다.


- 최근 ‘합천 평화의집’이란 곳에 원장으로도 취임하신 것으로 아는데, 근황은 어떤가.

▲현재는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연구원에서는 지방자치에 관한 연구는 물론 여러 사업에 대한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 또 평화재단의 평화연구원 및 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는데, 그 쪽에도 상당한 시간을 쓰고 있다. 그 밖에도 여기 저기 관계 하는 곳이 많아서 한 곳에 집중하고 못하고 부족한 역량이 분산되는 경향이 있어서 걱정이다.


-총리 물망에 오르시기도 했다. 정계 복귀 의사는.

▲개각 때마다 약방의 감초 처럼 이름이 올라가곤 하는데, 정부에서 큰 개편을 하려면 폭넓게 검토가 돼야 하기 때문에 의례적으로 이름이 거론되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란 것을 잘 알지만, 계속 언급되는 것은 과거 국회의원 재임 기간 맡았던 역할이 언론을 통해 과대 포장된 면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로서는 정치 일선에 복귀할 의사는 전혀 없다. 내가 상당한 지략과 식견이 있는 사람처럼 인식돼 있는 측면이 있는데, 사실 특별한 역량도 없는 사람이다.


- 집권 후반기를 맞은 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집권 2년 반의 평가는 이미 다 나와 있다고 본다. 언론보도만 봐도 종합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더 보탤 것은 없다. 그간 비판적인 얘기를 했던 것은 아는 게 많아서가 아니라 나보다 아는 게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안 하니 나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욕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잘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얘기 한 것 뿐이다.


- 최근 빚어진 개각논란에 대한 견해는.

▲임기 반환점에서 실시되는 개각은 다른 때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오히려 이번 개각으로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가 굉장히 어려워 질 것으로 본다.

청문회 과정을 보면 현 정부에 대해 우호적이든 비판적이든 모든 언론이 똑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정부 스스로가 부도덕한 정부라는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대통령이 임기 전반기를 어렵게 보냈고, 후반기에도 국내외적 여건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개각마저 국민으로부터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다면 어떻게 신뢰 속에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겠나.


-보수대연합 논의와 관련해 향후 정계개편을 예상하는 시각이 많다.

▲짐작하건데 보수대연합 얘기가 나온 동기는 현 정부가 국민적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보수 세력 입장에서 보기에 이대로 가면 다음 대선에 필패 할 수 밖에 없다는 걱정이 있기 때문이라 본다.

그러나 보수대연합이란 말 자체가 선거에는 유리한 용어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보수 세력이 결집한다 해도 보수 성향의 유권자는 30%가 채 안되고, 다수의 20~40대가 정서적으로 ‘보수대연합’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간 지대 유권자들을 어떻게 지지층으로 흡입하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은 보수 세력이 이 중간 지대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나 돌아봐야 할 때고, 지지를 받지 못하는 원인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 내부가 분열되면 지는 것은 뻔하지만, 그렇다고 연합만 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회동을 가졌는데.

▲양 쪽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 본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권재창출이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인식이 있을 것이고, 박 전 대표는 대통령과 등을 진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인식했을 것이다.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이 당선은 시키지 못 해도 떨어뜨릴 힘은 있지 않겠나.

한쪽은 정권재창출, 한쪽은 당선이라는 과제를 놓고 보면 손 잡아야 할 이유가 분명히 보일 것이다. 한 번 만남으로 인간적 신뢰가 회복 됐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이해관계가 맞으면 연대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보수 진영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

▲한국정치의 역동성에 비춰볼 때 지금 상황에서는 원론적인 얘기 밖에 할 수 없다. 선거는 항상 상대적이다. 구도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여당과 야당의 후보가 누가 되느냐를 봐야 할 것이고, 누가 얼마나 단결하느냐 혹은 분열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여권만 놓고 본다면 이미 많은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나와 있는데, 대통령 입장에서는 여권 내부의 대권 경쟁 구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춰볼 때 이런 복잡한 구도는 정리되는 과정에서 힘이 모아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힘이 소진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개헌론도 회자 되고 있다.

▲개헌 자체에는 찬성한다. 그러나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문제가 있다. 정치권의 이해에 따라 헌법이 개정되는 것은 막아야한 한다는 것이었다. 헌법 개정은 충분한 시간과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 국민의 이해가 있은 후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이 최근에도 개헌 문제를 언급했는데, 진지하지 못하게 그냥 던져 놓듯이 개헌 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국정 책임자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라 본다. 헌법 개정을 논의하려면 적어도 1~2년 안에 끝내겠다는 태도가 아니라 무엇을 빼고 넣을 것인지 고민하며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정치하는 사람들 먼저 스스로 얼마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해 왔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환경부 장관을 지내시기도 했는데, 4대강 문제는 어떻게 보고 있나.

▲4대강 사업의 경우 국민 입장에서는 찬성과 반대 논리가 다 옳은 것 같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대중을 쉽게 동원하거나 폭발성을 갖기 어려운 이슈다. 그렇다고해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밀어 부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 정부는 반응성과 책임성이란 원칙을 지켜야 한다. 국민이 반대한다면 그 이유를 이해해야 하는 것인데, 4대강 문제를 놓고 보면 반응성의 원칙이 지켜졌다고 보기 힘들다.

대통령이 평생을 CEO로 산 사람이라 기업인의 가치와 행동 양식이 몸에 베어 있고, 기업과 국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는 측면이 있다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국가는 이윤극대화와 생산성ㆍ효율성을 생명으로 삼는 기업과는 추구하는 가치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물론 대통령의 동기 자체를 의심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방법이다. 방법을 잘 못 선택하다보니 좋은 동기를 살릴 기회가 없는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 결과가 그런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열심히 했지만, 국정 운영 방식이 잘못 됐다는 국민의 냉엄한 심판이 있었다.


-지난 세종시 수정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나?

▲ 역시, 문제는 방법론이었다. 대통령이 (수정안을 제기한) 동기를 의심해서는 안된다. 어떤 정책도 지나고 나면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한 번 결정했으니 고칠 수 없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다만 방법이 잘 못 돼서 부담만 잔뜩 떠 안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선의에 찬 우행은 악행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결국 뜻도 이루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국력의 소모가 있었나. 역시 민주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충청도 사람들의 정서나 풍토를 잘 이해하지 못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원안보다 많은 경제적 혜택이 주어지면 동의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인데, 충청도 사람들은 돈으로 쉽게 설득되는 사람들이 아니다.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청와대에서 세 분의 대통령을 모시며 한국의 대통령이 참 어려운 자리라는 것을 느꼈다. 한국은 국민 역량이 매우 뛰어나고, 생각보다 상당히 다원화된 나라다. 사회가 다원화된 만큼 국민 역량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는 보다 세련된 리더십이 필요하다. 사회적 갈등과 충돌을 잘 조화시켜 국민 역량을 모으기 위해서는 굉장히 뛰어난 리더십이 요구되는 것이다.

국민도 어떤 사람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을 갖춘 사람인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하며, 정치 지도자들도 그에 걸맞는 자질과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호소하고 싶다.


<윤여준 전 장관은>
1939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단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1977년 주일대사관 공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청와대에서 공보 및 의전ㆍ정무 비서관을 역임한 뒤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을 지냈다.

2000년에는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고, 한나라당 총재 정무특보와 여의도연구소장, 기획위원장을 지낸 뒤 2004년 정계를 은퇴했다. 현재는 (사)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과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및 교육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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