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줄중 환자인 민호는 ‘죽고 싶은’ 남자다. 틈만 나면 자살을 시도하는 그에게 어느 날 ‘죽이고 싶은’ 남자가 나타난다. 같은 병실을 쓰게 된 환자 상업이다. 아내를 겁탈하려 했고, 끝내 목숨까지 빼앗은 악당. 민호는 상업을 죽이기 위해 재활훈련에 힘쓴다. 그런데….
민호와 상업. 민호에게 상업은 아내를 겁탈하려 했고 결국 목숨까지 빼앗은 나쁜 놈이다. 죽이고 싶다. 상업이 뇌수술을 받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기회도 좋다. 민호 또한 팔 하나밖에 쓸 수 없는 성치 못한 몸.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필살기’를 펼친다.
‘탁구공만 맞아도 죽을 수 있다’니 컵 던지기, 스타킹에 비누 넣어 때리기, ‘제리뽀’를 먹여 질식사시키기, 전기치료를 받고 있을 때 물을 뿌려 감전사시키기, 급소에 쇠구슬 던지기 등등. 유치찬란하고 기상천외한 복수의 ‘필살기 5종 세트’는 폭소와 동시에 긴장의 리듬으로 죄어온다.
웃다보면 본론이 시작된다. 상업이 정신을 차리면서부터다. 상업은 거꾸로 민호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고 가정을 파탄에 빠뜨린 원수임을 기억해낸다. 도대체 누구의 기억이, 누구의 말이 진실인 걸까. 영화는 이때부터 ‘흥미진진한 스릴러’로서 색깔을 드러내고, 서로를 죽이려는 둘의 싸움도 살벌하게 강도를 높여간다.
문제는 마무리다. 거짓된 기억에 가려진 진실, 이들이 같은 병실을 쓰게 된 사연, 그들의 주변 인물들의 정체가 우격다짐으로 쏟아지는 반전은, 좋은 아이디어에 마지막까지 공들인 연출을 단박에 무너뜨린다.
반전에 대한 강박증을 떼놓는다면, ‘죽이고 싶은’은 참신함이 돋보이는 수작(秀作)이다. 근사한 아이디어에 꼼꼼하게 엮어가는 연출 솜씨도 좋다. 코미디와 스릴러, 공포를 불러내는 장치들이 뒤엉키면서도 이야기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특히 천호진과 유해진, 두 배우가 뿜어내는 연기 공력은 압권이다. 분노에 가득한 눈빛으로 민호를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 욕설과 농담을 곁들이며 관객들에게 휴식 같은 웃음을 던지는 유해진의 연기는 ‘이끼’에서 보여준 명연기에 버금한다.
두 배우의 ‘징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러 간 값한다. 이들이 불편한 몸을 격렬하게 부딪치는 막바지 결투는, ‘가학’일망정 끝까지 밀어붙이는 쾌감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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