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철 대전예술고 이사장 |
'근대화'란 단어는 영어로 'Modernization'이고, 'Industrialization'은 '산업화'란 의미를 갖는다. 또한 '세계화'는 'Globalization'이라고 쓰이지만, 선진화란 영어의 단어는 필자의 영어가 짧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우리가 의미하는 그것에 맞아 떨어지는 의미로 쓰여지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굳이 찾아 내자면 'Civilization'(문명화)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여기서 필자는 선진화란 영어 단어의 유무를 논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다. 문제는 필자의 시각으로 '선진화'란 단어가 국가적 국민적 어젠다로는 좀 어울리지 아니하는 단어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를 잠시 해 보고 싶을 뿐이다. 단어자체를 듣는 순간 언뜻 드는 느낌은 상당히 사대주의적이고 좀 고루하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무엇에 쫓기듯, 무엇을 따라잡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있다는 느낌이다. 도대체 선진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진화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필자는 마치 우리가 주장하는 선진화가 100년전 왕조적 사고체계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양식 복장을 하자고 주장하는 듯 들린다. 필자의 느낌으로는 산업화, 민주화세대를 거쳐온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이 젊은 시절 고생했던 경험에 대한 보상으로 대한민국의 세계적 지위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느껴본, 약소국, 개발도상국이기에 느꼈던 고초 등에 관한 것에 대한 대물림을 강력히 거부하는 마음이 곁들어져 있지 않나 한다.
그렇다면, 후대로서 선대에 참으로 고마운 일이긴 하나, 약간은 21세기 초창기 대한민국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의 미래상과는 약간은 괴리가 있는 듯하다. 마치 세계적 예술가, 운동선수를 꿈꾸는 자식에게 판검사, 의사의 직업을 강요하는 부모와 같이 말이다. 선진화를 좀더 쉽게 표현하자면, 이젠 우리도 대접 좀 받고 살아보자는 발상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자의 주장은 선진화는 국가에서 목표를 정해 놓고 산업화 시절처럼 숫자의 놀음으로 이룰 수 있는 성과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국가의 '힘'이 선진화의 조건도 아니다. 과거 소련은 냉전시대 양대 축 중의 하나였으나 소위 선진국이라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나치 독일이나 제국주의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과거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가는 길에서는 좀 빠르고 효과적인 길이 있을 수도 있으나 지금의 대한민국과 한국민이 지향해야 하는 지표와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경제 제일주의도 아니다. 우리가 소위 졸부들의 사회적 위치를 인정하지 아니하는 것처럼 과거 경제적 동물로서의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 점과 두바이나 사우디아라비아가 선진국대열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점은 남으로부터 존중을 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선진화를 영어로 'Civilization'이라고 한다면, 그 지향점은 시민사회의 숙성과 국민행복지수에 달려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신뢰나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 타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독선과 아집, 승자 독식주의의 대한민국, 엘리트만의 문화예술과 체육 등 현 대한민국의 내부가 썩 외부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는 모습은 아닌 듯 하다. 선진화는 인위적일 수 없고 국가의 겉치레가 아닌 국민 하나하나의 모습으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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