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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콩깍지 사랑

[교육단상]김윤희 대전둔천초등학교장

  • 승인 2010-08-24 14:17
  • 신문게재 2010-08-25 20면
  • 김윤희 대전둔천초등학교장김윤희 대전둔천초등학교장
P군의 이상형은 조금 독특했다. 그는 요즘 대세라는 V라인과 S라인을 선호하지 않는단다. 오히려 볼이 통통한 아가씨가 귀여워서 좋단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스치는 비누냄새가 좋고, 가녀린 체구보다 역시 조금 통통한 몸매에 플레어 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그런 순정형의 여인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21세기의 조형적인 세련미보다 19세기의 자연적인 순수함을 동경하고 있어서 현실적인 결혼에는 얼마쯤 거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 김윤희 대전둔천초등학교장
▲ 김윤희 대전둔천초등학교장
그가 신붓감을 보여준다고 할 때 P군의 어머니는 가슴이 설?단다. 외모보다 성격을 먼저 보는 연륜이지만, 그의 이상과 선택이 어떻게 맞물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J양은 25세로 P군과는 7살 차이란다. 방글거리는 모습이 착하고 상냥해 보였고, 다소 이국적인 얼굴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올리비아 핫세'가 겹쳐 보이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P군이나 그의 어머니 눈에는 콩깍지가 덮인 것이 분명했다. 독특한 얼굴이 대개 그렇듯이 J양도 보는 이마다 평가가 달랐기 때문이다.

J양의 어머니는 딸과 솔메이트였던 모양이다. 품에만 끼고 살던 딸이 첫사랑을 만난 것은 예감했지만 결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단다. 고개를 젓는 엄마에게 실망한 딸이 단식을 강행했고, 결국 그녀도 자식을 이기지는 못했단다.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라고 했던가. 콩깍지는 이렇게 주변사람들까지 동화시키는 프리즘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명의 물결이 도도할수록 순수한 사랑을 지켜내기가 어렵다. 가장 진솔해야할 결혼마저도 계산기를 두드려대는 세태에서 오직 사랑만을 바라보고 직진하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소유한 콩깍지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미노처럼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콩깍지는 상대의 장점만 바라보게 한다. 때로는 단점을 장점으로 용해시키는 용광로의 역할도 한다. 아침이면 달려드는 수많은 사건사고의 주인공들에게, 서로 다른 이념으로 목에 핏줄을 세우는 이들에게, 등을 돌린 지 오래된 사람들에게 콩깍지를 속달등기로 보내고 싶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나고 돌아오는 우리 선생님과 아이들에게도 콩깍지를 선물하고 싶다. 무조건 사랑할 수 있는 콩깍지를 쓰고 2학기의 시작종을 좀 더 힘차게 울리고 싶다.

이외수는 '외뿔'이란 작품에서 인간은 네 가지 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육안(肉眼), 뇌안(腦眼), 심안(心眼), 영안(靈眼)이 그것인데, 먼저 육안으로 '사과'를 본다면 그것은 그저 음식물에 불과하단다. 그러나 뇌안으로 보면 사과는 음식물이 아니라 탐구물이 된단다. 심안은 사과에서 시와 노래, 사랑과 은총이 보이고, 영안의 경지에 이르면 신과 우주와, 자신과 사과의 본성이 하나로 보여서 삼라만상이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게 된단다.

여기서 콩깍지 눈은 심안과 영안의 공통분모쯤 되지 않을까 싶다. 마음과 영혼의 눈으로 본다면 모든 조건을 초월한 순수한 사랑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사랑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왜냐하면 사랑은 순수할수록 생명이 길기 때문이다. 요즘 기부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만 기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메마른 세상을 촉촉이 적셔주는 '사랑'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기부인 것이다.

문득 그 옛날 여름방학과제로 단골메뉴였던 수수깡 안경이 떠오른다. 그 안경을 쓰고 친구랑 마주보면서 깔깔거렸던 기억이 동화처럼 아름답게 떠오른다. 아무리 화가 난 사람도 웃을 수 있는 그 수수깡 안경이라면 무형의 콩깍지 눈을 유형의 눈으로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내 유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수수깡 안경을 찾아 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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