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느리게 사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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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느리게 사는 행복

<도서관 사서들의 맛있는 책 읽기> ■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승인 2010-08-24 14:15
  • 신문게재 2010-08-25 12면
  • 최규란 한밭도서관 사서최규란 한밭도서관 사서
제주올레 책인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은 서명숙님의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여행’ 이후 두 번째 책으로 제주의 비경들과 사연, 올레와 얽혀진 인물 이야기들을 기자출신답게 맛깔나는 필체로 써내려간 책이다. 서명숙님의 열정과 신념, 인맥과 행운까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깔끔하고 시원한 문체와 아름다운 제주의 사진까지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 최규란 한밭도서관 사서
▲ 최규란 한밭도서관 사서
여러 내용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가족, 그 따뜻하고도 징그러운 이름'이었다. 이 글은 40대 후반의 아버지와 고등학교 1학년 아들 이야기다. 회사일로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는 어쩌다 일찍 들어오면 외려 아이와 부딪히기만 한다. 컴퓨터 그만하고 이야기 좀 하자면 아들은 짜증부터 부리고 신경질 내면서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그 가족이 함께 떠난 올레여행에서 하루 이틀은 아이가 걷기를 내켜하지도 않고 온종일 불만투성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길을 걸으면서 나눈 대화로 차츰 아버지와 아들은 마음을 열고 서로 돈독해지게 되었다. 또 가족관계에 스트레스를 받던 중년 여성이 올레길을 걸으며 가족의 의미를 되찾게 되는 이야기 등은 우리 가정의 모습과 흡사해 더욱 공감이 갔다. 길을 걷는 동안 희망과 해법을 찾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이 올레의 힘인 듯하다.

“좁은 공간에서 늘상 부대끼다 보면 사람 귀한 줄 모르는 법, 한 지붕 밑에 사는 식구들 일수록 떨어져 있어봐야 상대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된다. '따로, 또 같이' 지낼 줄 알아야만 오래 간다”라는 서명숙의 가족해법에 공감이 느껴진다. 이 책에는 제주올레를 만든 사람들, 올레꾼들 이야기, 가족이야기가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가슴 찡하게 전해지며 또한 올레스피릿이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들려준다.

올레스피릿 1=제주 올레길을 내는 첫 번째 원칙은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사람 한명이 지날 수 있는 좁고 아늑한 길을 내는 것이다. 그래서 손으로 돌을 옮기고 땅을 고르고 흙을 다진다. 없는 길은 새로 만들고 끊어진 길은 잇는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다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연친화적인 길로서 꾸밈이 없고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올레스피릿 2=올레길은 놀며 쉬며 천천히 걷는 길이다. 각자의 속도대로 길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상처를 치유 받고 위로 받는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진정한 행복을 맛보기도 한다.

난생 처음 걸어본다며 꽃처럼 웃는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 죽으려고 왔다가 아름다운 올레길을 걷다보니 마음이 치유되어 다시 삶을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 제주 올레을 찾은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 한비야, 조정래 작가, 여성학의 대모 이효재 선생과의 인연도 소개한다.

올레스피릿 3=공정여행, 올레스러운 여행을 지향하며 만든 할망숙소는 홀로 사는 할망들이 자신의 집에서 직접 민박을 한다는 아이디어를 실현한 것이다. 제주할망들과 지역주민, 올레꾼 모두에게 도움을 주며 행복한 여행을 지향한다. 또한 1사 1올레를 만들어 마을과 기업을 연결 상생의 파트너십을 만들고 있다.

올레스피릿 4=대한민국에 올레신드롬이 불고 걷기열풍이 일어면서 제주 지역경제의 활성화는 물론 올레 아카데미를 만들어 올레길의 지질과 생태, 음식, 신화 등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세계의 걷기축제 나이메헨의 축제처럼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기 위한 꿈을 꾸고 있다.

대한민국은 너무도 속도가 빠른 나라다. 성적도, 승진도, 집을 넓혀가는 일도, 운동도, 걷기에서도 남보다 빠르기를 원한다. 빨리 가려다 보니 자빠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저 옛날 제주 할망들의 지혜를 “꼬닥꼬닥 걸으라게” 걷는 길만이 아니라 인생길에서도 마찬가지다.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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