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날로 먹는 것'이다. 가공하지 않고 가장 쉽고 흔히 먹는 방법이지만 헤매다가 찾아 낸 답이었다.
그 선생님의 출제는 예상을 뛰어 넘는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시험문제를 진위형(眞僞型)으로 내면서, 정답은 거의 ○가 되도록 출제를 하는 식이었다. 사지선다형(四枝選多型)의 경우 정답은 거의 같은 번호였다. 그러니 눈치가 빠른 학생은 웬만하면 고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열심히 공부를 한 학생이나 출제 경향을 꿰뚫은 학생의 점수에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이러하니 착실히 공부를 한 학생들의 입에서는 불평이 나오곤 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정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제자의 성향과 의도를 읽어내는 것도 능력인 거야” 하셨다. 그 말씀이 수긍이 되기도 했지만 과연 적정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이런 시험의 추억에서, 요즈음 한 편에서는 복지사업의 확대를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복지병 수렁'을 염려하는 복지정책에 대한 시각차의 현상이 왜 오버랩 되는지 모르겠다.
혹시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라가 책임져주는 복지의 천국이라며 선망하던 유럽의 여러 나라가 복지정책으로 인해 재정적 위기를 겪고 있고, 영국은 1940년부터 70년 동안 시행되어온 어린이에 대한 무상급유(無償給乳)를 재정문제로 중단하고 다른 방안을 마련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런 현상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물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복지기관에서 감당할만한 능력이 있다면 좋은 정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온 국민이 여유롭고 안락하게 잘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모두가 추구하는 복지사회가 실현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시행되기 시작하는 복지정책이나 '무상'으로 행해지는 시책은 좀처럼 중단하거나 줄일 수는 없고, 이에 따라 특히 열악한 지방재정은 휘청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복지수준이 충분하다거나 사회보장제도가 완벽하므로 더 이상의 복지정책은 없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TV나 라디오에는 어려운 사정에 있는 막막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가 여럿 있다. 여기에 소개되는 갖가지 어려움과 딱한 사연을 접할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차오르곤 한다. 몸이 아픈 어린 아이를 데리고 행상에 나서야 하는 홀아비, 삶의 무게가 너무도 힘에 겨운 소년 가장. 집나간 부모를 대신해 철부지 손자를 맡아 사는 고달픈 노인. 물론 행정기관이나 복지단체 그리고 이웃의 도움이 있었겠지만 과연 그 헤어나기 어려운 형편을 벗어나게 할 만한 적정한 수준의 대책과 지원방안은 없는지 하는 의문을 갖곤 한다.
따라서 복지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계층에 대한 일률적인 지원보다는 그와 같이 절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선택적 지원, 맞춤식 복지가 먼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모든 국민을 위한 복지'는 잠시 미루어 두고 특수한 어려움에 처한 빈곤층과 저소득 근로자 중심으로 펼치고 또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대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정책을 내놓기 보다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시책 중에서 보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짚어보고, 새로이 제시되는 정책들에 들어 가야할 재정의 추계와 함께 미래세대의 부담능력까지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시험의 출제 기법으로 점수를 고르게 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하겠으나 이보다는 부진학생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함을 답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어긋난 생각일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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