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김동만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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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선]김동만에게 길을 묻다

[금요논단]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0-08-19 14:56
  • 신문게재 2010-08-20 20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보호자 들어오세요.” 산과 간호사가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말을 나긋하게 내보냈다. 말의 개념이 없었으므로 '보호자'라는 세 마디 입말은 듣는 이의 귓밥이 되지 못했다. 문 밖을 서성거리던 난민 행색의 앳된 청년이 목구멍으로 한 모금 넘기지도 못할 뻐끔 담배 질을 계속했다.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물 먹인 도리깨질을 하듯 거칠게 문을 열어제낀 간호사가 다시 꼬리잘린 말 화살을 쏘았다. “보호자 들어오라니까.” 청년이 황망하게 문을 밀고 들어가자 기력이 빠진 열아홉살 '어른' 여자와 보송보송한 한 시간짜리 '사람' 하나가 '보호자'의 보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엉겁결에 두 사람의 보호자가 된 김동만의 그 때 나이 스물 한 살이었다.

열 네 살 되던 해 봄에 김동만은 서울 구로동의 산업전사가 되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골방에 들어앉아 코털 깎이용 새끼 가위로 옷고름의 실밥을 뜯었다. 밤이 돼 일이 끝나면 물찬 제비처럼 영등포 역전까지 날아가 바지를 질질 끌고 불량한 가슴걸음을 걸었다. 삯바느질로 청춘을 꿰매고 연명하는 일은 무료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일터를 박차고 나오는 날이 늘어났다. 아예 역전에 나가 말 힘을 쓰고 발 주먹 날리는 것이 그의 주업이 되었다. 보복 폭력에 쫓기고 경찰에게 닦달을 당하자 고향 장터에 휴양을 와서 '서울주먹'으로 입신했다. 서울건달과 시골깡패를 전전하던 김동만은 두 살 어린 고운 처녀를 만나 시골살림을 냈다. 자신의 노동으로 돈을 버는 일보다 은근과 강짜로 다른 사람이 노동해 벌어들인 돈을 나눠쓰는데 익숙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았는데 아들이었다.

핏덩이 아들을 우두망찰 바라보던 김동만은 머리에 생각번개를 맞았다. 부끄러움을 생각했다. 건달과 깡패와 장터 사람들에게 부끄러울지언정 강보에 싸인 아들한테는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되고 싶었다. 노동해 번 신성한 돈으로 아들에게 먹일 신선한 우유를 사기로 했다.

아는 사람 없는 익명의 도시로 숨어들어가 몰래 돈을 버는 일보다는 고향 장터 사람과 동네 건달들에게 주먹을 씻고 갱생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고물 리어카를 하나 사서 끌고 장터를 누볐다. 파지와 폐지와 고철과 쓰다버린 비닐과 비료포대를 줍는, 스물한 살 김동만은 고물장수가 되었다. 틈틈이 중국집 주방을 드나들며 여섯해 동안 고물을 줍자 놋쇠와 주물 박사가 되었다. 그리고 한 아낙과 아들 하나와 자신을 보호하는 진짜 '보호자'가 되었다.

철과 기계에 눈이 밝아진 김동만은 포클레인 일을 따라 나섰다. 자격증 시험을 봐야 하는데 영어를 몰랐다. 배운적이 없었다. 더듬더듬 눈짐작으로 영어 알파벳 그림을 익혀 자격증을 따는데 3년이 걸렸다. 서른 즈음에 초등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아내에게 면사포를 씌워 주었다.

어떤 소설가의 아들처럼, 김동만의 아들도 “나는 엄마아빠 결혼식 때 떡도 먹고 고기도 먹었다”고 까불고 다녔다. 포클레인 기사가 된 김동만은 동료들이 부당하게 임금을 떼이는 일을 해결하는데 왕년의 주먹질 대신 '주먹 기질'을 발휘했다. 일감이 부족한 동네의 동료들을 위해 넘치는 마을의 일감을 나눠주는 정보 분배에 발 벗고 나섰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김동만의 휘하에 특수장비 자격증을 소지한 대학 졸업생들이 즐비했다.

젊은 포클레인 기사들은 의리에 넘치는 '신사' 김동만을 기억할 뿐 서울건달과 시골깡패를 넘나들던 '김주먹'의 과거를 전혀 몰랐다. 그렇게 김동만은 젊은 기사들의 '보호자'도 돼 주었다. 일당 20만원을 받는 포클레인 기사 김동만은 일이 없는 날이면 바닷가 방죽에 앉아 고기를 낚는다. 스물 일곱 살 아들은 대학을 마치고 직장인이 되었다.

고위 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 절차가 시작되었다. 탈세와 거듭된 위장전입, 도회 쪽방과 산골 별장 터에 투기질 했다는 의혹들이 질펀한데도 청문 대상자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도무지 부끄러운 기색조차 없다. 소나기 피하듯 적당히 눙치면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갈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의혹들이 어찌 눈총 몇 발 맞고 덮어버릴 사안들인가. 목을 뻣뻣이 세우고 사이비 '머슴'을 자청하는 작태를 연출하지 말고 스물 한 살에 고물장수가 된 김동만에게 해법을 물어보라. 핏덩이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비가 되려고 고향 땅, 아는 사람 천지인 그 곳에서 폐지 줍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하지 않은가. 정녕 그대들은 김동만에게 세금을 거둘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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