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진]업그레이드 '개그콘서트'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홍진]업그레이드 '개그콘서트'

[중도춘추]김홍진 한남대 교수

  • 승인 2010-08-19 14:20
  • 신문게재 2010-08-20 20면
  • 김홍진 한남대 교수김홍진 한남대 교수
즐겨보는 TV 프로그램 가운데 '개그콘서트'라는 게 있다. 흔히 '개콘'으로 호명되는 이 코미디 프로그램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기의 비결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웃음 유발 장치로서 말장난도 한 몫 한다.

▲ 김홍진 한남대 교수
▲ 김홍진 한남대 교수
말장난은 일상적인 문법규칙을 위반하고, 딱딱한 사회적 금기를 깨며, 억압적 현실원칙에 저항하는 양식이다. 말할 것도 없이 말장난에는 쾌락의 원리가 작동한다. 그것은 모든 지배 담론의 권위에 저항하면서 관객들에게 쾌감을 준다. 그 쾌감은 정상적이라 생각하는 관념이나 권위, 혹은 이성적이고 윤리적이라 생각하는 인간의 이면에 감추어진 허위의식 등을 비틀고 희화화하는 데서 온다.

혹자는 말장난이 심하다 비판하지만 말장난 자체를 폄하할 까닭은 없다. 그 저항성이나 전복성이 예전보다 약해져 업그레이드 좀 했으면 싶은 바람이다. 아무튼 '봉숭아 학당의 동혁이 형'이나 '남성인권보장위원회', '두분토론' 등과 같은 꼭지는 그나마 사회적 문제나 증상을 간추리되 말을 싹 비틀어 재미를 주는 묘미가 있다. 말장난이 사회적 문제나 이슈에 적용되면 자연스레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듯, 말장난이 일상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현실의 논리는 뒤집어지고 해체된다. 그리고 그 전복이 절묘하게 일상의 이면이 감춘 지배 관념과 논리에 시비를 거는 순간 말장난은 웃음을 동반한 쾌감을 준다.

농담이 웃음의 쾌감을 성공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갖추어야 할 게 있다. 예컨대 농담의 주체가 듣는 이의 욕망을 이해하고 금지된 욕망을 적절히 충격해야 한다. 말장난은 시중을 떠돌며 인구에 회자되는 우스갯소리에서도 중요한 구성원리다. 한때 유머 서사물이라 불렸던 참새, 식인종, 최불암, 덩달이, 만득이, 사오정 시리즈도 비슷한 맥락에 기초해 있다. 유머 서사물의 이야기꾼이나 개그맨들이 펼치는 농담에서 권위는 조롱거리가 되고, 금기는 해체되며, 고정관념은 면박 당하고, 정상은 비정상으로 폭로된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는 꿈, 농담, 실언과 무의식의 관계를 파헤친 인물이다. 그에게 꿈은 증후인 동시에 치료이듯 농담도 증후인 동시에 치료다. 억압된 무의식이 꿈이나 실언을 통해 자기(ego)도 모르게 말해지고 해방되듯 농담도 억압된 욕망을 풀어 즐거움을 준다. 말하자면 꿈, 농담, 실언은 무의식적 욕망의 표출이자 증후다. 그런데 꿈이나 실언은 사회성이 덜 하다면, 농담은 쾌락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정신적 기능 가운데 가장 사회적이다. 꿈은 타자와 소통하지 않지만 농담은 청자(관객)인 타자의 실제적 참여와 소통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농담은 위반의 쾌감인 동시에 일종의 사회적 증후이기도 하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어느 젊은 의원이 대학생들을 앞에 두고 아나운서라는 특정 직업의 여성을 소재로 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유쾌(?)한 소식을 접했다. 이와 관련해 최고 권력자를 비롯한 유명 여성 정치인들까지 희화화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은 사회 윤리적 금기를 동반한다. 허용과 금지, 해도 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리지 못하면 설화(舌禍)를 입게 마련이다. 말하는 주체가 듣는 이의 욕망을 이해하고 금지된 욕망을 적절히 자극하는 '개콘'의 희극배우나 광대놀음을 지켜보는 관객이 아닌 이상 말이다.

'개콘'에도 금지의 힘은 존재할진대, 그리하여 점점 지겨워져 가던 차에 나름 한층 업그레이드된 '개콘'을 만나 충격이다. 그런데 이 경우 위반은 위반일진대 전복의 쾌감은 커녕 쓴웃음만 자아내게 했다. 왜냐하면 자주 반복되는 새롭지 못한 경험이고, 감춤의 미학을 져버리고 너무 노골적이라는 점이다. 슬픈 것은 단순히 그 증후가 개인무의식이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비슷하게 반복적으로 환기되는 현상에 비추어 본다면 그것이 한 개인의 증후라기 보다는 집단적 증후, 아니 증상에 가깝다는 점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3.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1.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2.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3.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4.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5.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