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은희 서구건강체련관장 |
의료보험제도 또한 잘 정비되어 있어서 의료사각지대나 치료비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국민의 많은 부분이 보완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감기가 걸리거나 소화가 안 될 때 약국이나 슈퍼에서 비상약을 손쉽게 구입할 수도 있을 만큼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이 매우 좋다. 그러나 이러한 건강시스템은 신체건강에 대한 욕구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평균수명이 80세인 시대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OECD국가 중 4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사망원인 중 암을 제외하면 1위에 해당하며, 특히 청소년 자살은 최근 2년새 47%나 증가했다.
국가재정적인 차원에서도 건강하게 장수해야 노년에 의료비 지출이 줄어든다. 그러나 정신질환을 인한 치료비와 생산성 손실 및 가족부담과 관련된 비용 등의 사회적 비용이 GDP의 0.5%(약 3조 8298억원)에 해당한다. 따라서 수명연장에 대한 신체적인 건강지원대책 못지않게 정신적인 건강지원대책이 절실하며, 특히 자살자에 대한 대책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현재 정신건강에 대한 보건복지의료시스템은 누가 얼마나 하고 있나? 어디에 가서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찾아보기 어려우며, 정신건강으로 상담을 받거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이나 보건복지기관도 주변에서 손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자살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자살자에 대한 관심, 예방책 등을 명시한 일본의 자살대책기본법과 같은 법률도 검토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한국은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가 있어도 주변사람들에게 털어놓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차별화된 정신건강지원전략이 필요하다. 신체건강지원과 마찬가지로 예방과 치료를 병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찾아가는 적극적인 지원방법이 아니면 그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서울 강북구에선 노인자살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예방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주 2회 전화로 상담하는 '텔레 체크서비스' 사업을 시범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자살을 막기 위한 사회적 제도망으로서는 마지막 라인을 남겨 두어서 그들이 자살을 결심할 때 마지막으로 매달릴 곳을 확보해주려고 생명의 전화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자살은 그만큼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아무도 나를 이 고통에서 구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지구상에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사랑하고 구해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한 명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그러나 자살직전에 걸려오는 전화를 기다리거나, 정기적으로 전화상담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살률 1위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치료서비스가 필요하다.
감기에 걸리거나 소화가 안 될 때 약국에서 쉽게 약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정신건강에 대한 지원시스템도 한국의 체면중시 특성을 고려해 접근성이 높은 서비스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하는데 가가호호 방문서비스, 대면서비스 등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생존해 나온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이 어찌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자기를 견디게 해준 힘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단 한 사람만의 사랑이라도 느낄 수 있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마음의 감기라고도 하는 우울증은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50% 이상의 자살을 예방할 수 있으니, 자기 생활의 주변에 있는 동네약국과 같은 정신건강시스템의 존재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수명을 연장해 주며 사회적 비용도 줄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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