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소장수 아들'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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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소장수 아들'의 경우

  • 승인 2010-08-18 10:31
  • 신문게재 2010-08-19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서정주의 '내 아비는 종이었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실제 종이 아닌 마름(소작지 관리인)이었고, 이러한 시의 거짓말을 시적 진실이라고 말한다. 시인의 화법으로, 농구 대통령 허재를 키운 건 “8할이 아버지”였다. 20년 동안 뱀 1만2000마리를 고아 먹인 얘기에 소름이 오스스 돋지만 여전히 감동적이다.


몇 할이 됐건, 잘났건 못났건 아버지는 자식의 퍼스낼리티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가족 유대의 고삐가 느슨해지고 스마트 시대, 스마트 할아버지 시대가 와도 그건 불변이다. 동족이라는 유대감은 우리를 편안하게 다독여준다. 감정적 유대감도 동족 유대감에 뒤지지 않은데,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의 “나는 소장수의 아들” 커밍아웃도 유대의 신경망을 슬쩍슬쩍 건드린다.

발탁 '시점'과 '자리' 모두 깜짝쇼 같은 김 총리 후보의 '소장수 드립'에 정치인의 성장 환경과 국정 운영이라는 관점을 빌미로 확대경을 들이밀 수 있겠다. 분명히 이 고도의 '촌놈성' 부각 장치에는 어떤 동족 상관성(kinship relevancy)이 존재한다. 소(牛)를 매개로 한 동족 유대감은 선친이 소 먹이는 목부였던 이명박 대통령에게로 이어진다. 더 이으면 아프리카 케냐의 염소지기 아들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도 가 닿는다.

동족 상관성은 각자를 보는 시각과 시각을 점점이 잇는 집단적 공유·공존 방식이기도 하다. 소장수의 직업적 전형성, 그러니까 제법 돈깨나 만졌고 장터에 그가 출현하면 돈이 돌았다는 옛 얘기는 묻어둔다. 차라리 돈, 권력, 명예와 무관한 3불(三不)의 아버지를 둔 자식 중에 개천에서 용 나는 '시골 출신의 법칙' 신봉자를 만나기 힘든 현실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누구나 출연 가능한 기회 부여, 이것이 '슈퍼스타K'라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이다. 똑소리만 나면 부와 명성을 거머쥔다는 이 전복적 개념은 '소장수 아들'의 그것과 조금은 맞닿는다. 리얼리티 '쇼'의 호소력처럼 부풍(父風)도 끌어당김의 요소로 작동한다. 저번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경비원, 무능한 아버지, 참전용사 등 예닐곱 아버지의 등장에 할리우드 아버지들 생각에 빠져들었다. 종횡으로 위기를 뚫어 자식을 구하고 테러와 핵폭탄에 외계인에도 맞서는 초인 아버지는 부러움과 자괴감의 대상이다.

아버지 찾기와 동시에 영웅을 찾는 라스트 신에 이르면 정말이지 가슴이 아리다. 그러면서 오금이 저린다. 영화 같은 영웅주의와 가족주의가 교묘히 조합된 김태호식 휴먼 스토리가 과연 가난한 아버지를 둔 아들딸들에게 로맨틱 코리아의 약속과 기회를 다짐했을까. 생각하니 더 먹먹해진다. 아버지 가방끈이 내 가방끈인 사회, 아버지 스펙이 없고 돈도 백도 없는 채 위대한 긍정을 하기란 쉽지 않다.

소장수 아들 출세기는 다른 한편 '친서민' 구호의 숨은 뜻을 전달하며 정곡을 찌른다. 마치 거기 내가 있는 듯한 행복한 착시를 주는 심리적 현장감 요소로 동원된다면 절묘한 소품이겠구나 싶다. 도의원, 군수, 지사를 거친 총리 후보의 성공담이 거꾸로 한 인간의 삶은 시대와 공간의 굴레에 갇힌다는 상실감의 원천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야겠다. 부정의 힘과 균형을 못 맞추면 허무로 가는 것이 긍정의 힘의 정석이다. 또렷한 사실 하나는 '소장수의 아들' 선언이 철학과 도덕성, 정책과 능력을 싸는 포장지가 아니라는 점. 인사청문회에서 옥석을 가리겠지만 소장수나 개장수 아들의 영웅 서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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