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찬 천안오성고 교사 |
또한 당시 중학교에는 없던 야간 자율학습을 개설하고 매일 학습지도와 상담을 통해 도시 아이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도록 격려해 주셨다. 생활지도나 인성지도에서 언제나 학생 편에서 상담해 주시는 인자한 아버지 모습 그 자체였다.
당시 진로를 고민하며 인근의 실업학교에 진학하려는 나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라. 너도 교사가 돼 보지 않을래?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 말씀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리고 결국은 교직의 길에 들어서 20여년 동안 그분의 은혜를 생각하며 그 분과 같은 훌륭한 교사가 되기를 소망하며 살고 있다.
공군사관학교는 입교식에 생도가 존경하는 교사 1명을 초청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몇년 전 천안중앙고에서 2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김영대 학생이 입교식에 나를 초청했다.
담임을 맡은 동안 특별히 잘해 준 것도 없고, 1년 후 다른 학교로 전출한 터라 나를 초청한 것을 의아해 하면서 입교식에 참석하여 그 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제가 사관학교에 간다고 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는데, 오직 선생님만 믿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하는 것이다. 상담할 때 '피그말리온 효과', '자기충족적 예언' 등 몇 마디 해준 것이 전부였는데, 그런 작은 믿음과 격려의 말이 학생에는 큰 힘이 됐다니 문득 중학교 시절의 스승님 얼굴이 떠올랐다. 또한 평소 학생들에게 무심코 했던 나의 말들이 어떤 격려가 되고 또 상처가 됐을까 생각하며, 새삼 교사의 말 한마디가 학생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는 학생의 눈높이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내 방식대로 설명하며 낮은 성적을 질책하기도 했다.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데 왜 안 하나?'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프로크루스테드의 침대'에 맞춰 제단하려는 것을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열정만 가득 안고서 배우고 느낀 것을 실천하는 수련의 기간이었다.
요즘은 대한민국 학부모가 모두 교육 전문가인 시대이고, 나 또한 중학생과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으로서 학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전과는 사뭇 다른 것을 느끼곤 한다. 이른바 '아버지 모드'가 되어 학생 행동의 겉모습만 보고 혼내려다가도 '내 자식도 이렇게 혼나면 얼마나 속상할까?'하는 생각이 들어 참고 사연을 들어주다 보면 공감대가 생기고 벽이 허물어져 이성교제나 가정문제까지도 술술 풀어 놓는 경우도 있다.
때론 '아버지 모드'이기 때문에 속이 상하고 더 엄격해지는 경우도 있다. 거짓말로 부모를 속이거나, 연락이 두절되어 부모님과 담임이 모두 애간장이 탈 때는 정말 부모의 마음이 되어 아주 엄하게 혼내고 나서 어깨를 두드리며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마음이 다 그런 거야. 이해하지”하면 죄송한 표정을 지으며 “헤헤, 선생님이 꼭 아버지 같아요”하며 웃는 모습을 보며 인간적인 신뢰와 진심을 다하는 사랑은 통한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한 '바람직한 교사상은 무엇일까?'의 물음은 교직 생활을 다하는 날까지 생각하고 실천하며 찾아볼 영원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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