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86년 봄부터 가을에 걸쳐 세워져 지금까지 25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대운하가 근접해 있고 한때 이윤이 높은 소금 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양주는 당나라 이래로 중국 남부지역 경제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경제적 번성을 바탕으로 학문과 예술이 발달해 시인, 화가, 작가들이 양주에서 이름을 떨쳐 청조의 건륭년 동안에는 양주팔괴로 불리는 화가들로 구성된 양주화파가 탄생했다.
이와 같은 예술의 발달로 황실 또한 양주의 고대 문명 및 화려한 문화에 끌려 양주를 자주 방문하게 됐다. 수나라 양황제와 청왕조때 캉시황제와 치옌통황제는 각각 이 곳을 6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황실을 수행해 양주에 온 고관들이 부유한 상인들의 멋진 별저 옆에 묵을 곳을 마련하기 시작해 원림들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외국인도 많이 거주했는데 오랫동안 양주에는 페르시아 무역상들의 거주지가 있었고 마르코폴로 또한 17년을 양주에서 살았다고 한다.
양주시의 얼굴로 불리는 '수서호'는 청수하고 수려한 경관으로 내외에 이름을 떨친 곳이다. 예부터 몸매가 풍만한 당조의 미인 양귀비를 항주의 서호에 비유하고, 몸매가 영롱한 미인, 한성제의 황후 조비연을 양주의 수서호에 비유할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공원이다. 수줍음을 타는 여자의 모습인 수서호는 100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데 버드나무와 복숭아꽃, 정교한 다리와 고대 건물이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양주는 아름다운 경관이 있는 가장 좋은 관광도시중 하나로, 그중에서도 개원은 양주의 대표적인 정원이다. 개원은 명나라때 건축되었던 정원을 1818년 소금무역을 담당하는 관리인 황지윤이 개축해 만들어졌다. 개원은 현재 중국 정부의 특별보호정책에 따라 문화유산에 등재돼 있고, 7만5900㎡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개원은 자연바위를 활용해 정원 안에 계절의 변화를 표현하고 있고, 중기 청조의 바위를 활용한 예술작품의 진수를 보여주는 독특한 곳이다. 매년 약 5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이 곳은 TV와 영화의 촬영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개원 외곽은 당청시대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거리로 유명하다. /중국 양주=한성일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