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찬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부 교수 |
기업 간의 관계는 경쟁과 협력하는 상생관계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관계는 경쟁관계인가? 이것은 아닌 것 같다. 자금, 인력, 기술 그리고 브랜드 등 마케팅 측면에서 중소기업은 어느 한 요소에서도 대기업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면 상생관계인가? 그렇다. 원칙적으로는 상생관계다. 즉, 서로 거래를 하면 둘 다 이익이 되는 관계다. 왜냐하면, 둘이 협력하면 둘 다 이익이 되는 상호보완적이고 윈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 대기업의 국제경쟁력은 원천기술이 강한 것보다는 조립생산 측면에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자동차나 휴대폰 등과 같이 조립생산 측면에서 강점을 가진 대기업의 제품 생산과정을 보면, 대부분 부품을 국내외 중소기업 가운데 하청관계를 가진 중소기업에서 조달하고 있다. 대기업이 부품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이유는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생산시설에 투자하고 사람을 고용하려고 드는 비용보다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규모 인원을 상시로 고용하고 막대한 설비를 보유할 때는 노사분규나 경기변동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즉, 조립생산 측면에서 강점을 가진 한국의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협업관계를 유지할 때 분명히 이익을 얻는 관계다.
그러면 한국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협업관계를 유지할 때 이익이 발생하고 있는가? 국내 중소기업의 47%가량은 대기업이나 1차 협력사 등에 납품하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의 반 정도가 대기업과 협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중소기업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이유는 독자적인 기술개발, 고급인력 확보, 자금조달, 그리고 판매 가운데 적어도 어느 한 가지는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중소기업이 국내의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대기업에 의존한다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익 극대화가 최대목표인 대기업으로서는 이런 상하관계의 구조 속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원자재 가격이나 환율 변동이 발생하더라도 비용의 증가를 하청 중소기업에 전가하려는 의욕을 갖게 된다.
그런데 세상사에서 어느 두 당사자 간에 거래가 지속하려면 거래하는 쌍방 모두 이익이 발생해야 하고 발생한 이익이 골고루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갑을 쌍방 가운데 둘 다 손해가 발생하면 거래는 절대 지속되지 않는다. 갑을 가운데 하나는 이익이 발생하고 하나는 거래하나 하지 않나 이익도 손해도 없다면 역시 거래가 지속되지 않는다. 거래가 지속되려면 쌍방 모두 이익이 되는 구조여야 한다. 모두 이익이 되더라도 한쪽은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는데 다른 한쪽의 이익은 쥐꼬리만큼 겨우 먹고살 정도로 적다면 이 관계는 지속되기 어렵다.
어느 정도는 공평한 이익의 나눔, 이것은 모든 인간사에서 거래와 관계가 지속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래서 최근에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부자들의 나눔 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해준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인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국가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신들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성숙한 자본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중소기업간 협업관계가 붕괴된다면 조립생산능력이 국제경쟁력의 주요소인 대한민국의 대기업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인식을 대기업에서도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대중소기업 상생 문제의 시발점이다. 정부에서 아무리 상생하라고 해도 대기업의 이러한 인식전환 없이는 관계가 개선이 안 된다. 대기업이 심각하게 중소기업과의 상생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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