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봉 충남여자고등학교장.수필가 |
요즈음 같으면 폭력 교사로 사회적 문제가 되겠지만, 홀어머니는 끝내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체벌로 인한 어려움이 있어 고민하던 차에 선배 교사로부터 잘못한 학생을 불러 혼낼 일이 있으면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빙 도는 동안 화난 감정이 수그러진다는 것이다. 그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행위는 사랑의 매가 아니라 감정의 매라는 것이다. 나는 선배의 조언을 들은 후 체벌하지 않고 학생을 지도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던 끝에, '산(김광림의 시)'에 나오는 시구(詩句)에서 묘안이 떠올랐다.
'면벽한 스님의 얼굴에/미소가 돌아'
옳거니! 스님들이 하는 '면벽'을 학생지도에 활용해 보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사전을 찾아보니 '면벽(面壁)'의 뜻은 불교에서 (좌선하기 위하여) '벽을 향하고 좌선(坐禪)함'이라고 풀이되어 있었다.
나는 불교의 종교의식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또한 교실에서 특정 종교의식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잘못을 스스로 깨닫는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을 뿐이다.
해마다 학년 초 첫 수업시간에 면벽에 대해 설명하고 면벽의 자세를 시범 보인 후, 앞으로 수업 준비가 안 된 학생, 과제 불이행 학생, 수업 태도가 불량한 학생은 면벽을 시키겠노라고 선언했다.
면벽은 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과정이므로 지적받은 학생은 앞으로 나와서 면벽을 실시하고 깨달으면 언제든지 제자리로 들어가도 좋다고 부언했다.
면벽을 끝내고 자기 자리로 들어갈 때 화난 표정을 짓는 학생은 거의 없다. 웃으면서 들어간다. 멋쩍음의 미소일 게다. 그때 학생들에게 “저 법열의 미소를 보아라. 저게 바로 진리를 터득한 부처님의 모습이란다. 오늘부터 아무개는 부처님이다. ○○○ 부처님”하고 말하면 교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된다.
학생들은 나를 '면벽선생님'이라 불렀다. 거리에서 졸업생 제자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하고는 옆에 있는 친구를 가리키며, “선생님 쟤 요즈음 공부도 안 하고 연애만 해요. 면벽시키세요” 라고 조크한다.
요즈음도 교사의 체벌 문제로 시끄럽다. 선생님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도 옛날 같지 않다. 선생님에게 대들고 말대꾸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 선생님을 화나게 한다. 그래도 때리는 행위는 비교육적인 방법이다. 매는 순간적인 굴종의 효과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을 온전히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오히려 피차간에 앙금과 상처만 남을 뿐이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행동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잘못한 아이도 조용한 곳으로 불러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격려해주고 따뜻한 말로 알아듣게 타이르면 그 아이도 변한다. 학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매의 무서움보다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이 더 위력을 발휘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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