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승철 을지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 |
항인지질항체 증후군이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우리 몸 안에 면역반응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매우 드문 병이다. 우리 몸은 70조에 달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각 세포마다 세포를 둘러쌓고 있는 세포막이 있으며, 이 세포막은 기름 성분인‘인지질(燐脂質)’이라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포막의‘인지질’을 공격하는 물질이 바로‘항인지질항체’이다.
항인지질 항체는 우리 몸에서 피를 굳히는 세포인 혈소판 및 혈관 벽에 직접 작용하여 피가 굳어지는 현상이 생기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결국에는 몸 안에 여러 혈관이 막히게 된다. 다리의 정맥 혈관이 막히는 경우도 있고 신장에 있는 혈관이 막혀 신장 손상을 일으키기도 있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항인지질항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성은 일반 여성들보다 뇌졸중 위험이 43배, 심장발작 위험이 5배나 높아 질병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항인지질항체 증후군은 주로 젊은 여성에게 찾아오는 병이므로 환자들은 임신에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걱정이 많다. 최근 이 질환이 습관성 유산의 원인 중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건강한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태아에게 충분한 영양공급을 해야 하는데 탯줄 혈관이 항인지질항체의 작용으로 피가 굳어 막히게 되면 서서히 태아에 영양공급이 안돼 자라지 못하게 되고 결국 심장이 멈추어 사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완치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지만 1983년 휴즈(Hughes)라는 류마티스의사가 처음 이 병을 발견한 이후 현재까지 많은 연구를 하여 조기 진단 및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면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혈전증의 위험인자가 있는 경우에는 평생 지속적으로 아스피린이나 와파린 등의 혈액응고를 막아주는 항응고요법이 필요하다. 평소에는 이와 같은 경구약을 복용하면 되지만 와파린이란 약이 태아에 영향을 미치므로 임신을 하게 되면 복용을 중단하여야 한다. 따라서 임신시에는 태아에 영향이 없는 헤파린이란 약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데 헤파린은 경구약은 없고 주사약으로만 사용이 가능하므로 임신 기간 내내 입원하여 분만시 까지 주사를 맞아야 하므로 환자나 가족들이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고 경제적인 부담이 많은 실정이다.
한 가지 희망은 항인지질항체 증후군과 같은 희귀질환자를 위하여 작년에 정부가 제정한 ‘희귀 난치성 질환 환자 의료비 경감 정책’이다. 진료비의 10%만 부담하면 되기 때문에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항인지질항체 증후군은 아직 희귀질환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아 환자들이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현재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등록 가능한 루푸스 환자보다 발생률이 적어 당연히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되어야 하나 이 질환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분류에 포함되지 못 한 것으로 생각된다.
항인지질항체 증후군은 태아는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한데 영양분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생명을 잃는 것이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크다. 더욱이 대부분 환자들이 젊은 여성으로 가족을 처음 꾸려나가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시기이므로 치료 받는데 어려움이 더하다. 하루빨리 희귀질환 등록이 가능하여 엄마 뱃 속의 태아가 걱정 없이 영양공급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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