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언복]'낮은 해산율'에 관한 두 외국인의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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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언복]'낮은 해산율'에 관한 두 외국인의 조언

[목요세평]표언복 목원대 교육대학원장·국어교육과 교수

  • 승인 2010-08-04 14:17
  • 신문게재 2010-08-05 20면
  • 표언복 목원대 교육대학원장·국어교육과 교수표언복 목원대 교육대학원장·국어교육과 교수
월북문인 이기영의 단편 민촌은 가난한 아버지에 의해 남의 집 첩으로 팔려 가는 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의 몸값은 겨우 '벼 한 바리와 돈 쉰 냥'이었다.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에서는 벌이가 없는 '룸펜' 주인공이 어린 아들을 인쇄소에 떠맡긴다. 기술이나 좀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입을 덜기 위한 수작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 우리 문학에 흔하게 등장하는 '모티프'중의 하나가 '자식 팔아먹기'였다. 일제가 제 나라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행한 식민지배 때문에 이 땅의 부모들은 자식을 팔거나 버리는 패륜을 저질러야 했던 것이다. 부모 중심의 혈연공동체를 가리켜 '가족'이라 하지만 우리는 오래 전부터 '밥 먹는 입' 즉, '식구'란 말을 더 많이 써 왔다. '인구'라는 말 속에도 밥 먹는 '입'의 중요성은 그대로 배어 있다. 가정이나 국가나 '입'의 수는 살림형편과 밀접하다는 것이 오래 전부터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기 낳는 일을 우리식으로는 '해산'이라고 한다. 어쩌다 '출산'이란 말이 널리 쓰이고 있지만 이는 일본식 한자어이다. 갈수록 낮아지는 해산율 때문에 나라의 고민이 꽤 심각한 모양이다. 지난 5년간 '제1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시행해 온 정부가 내년부터 추진할 제2차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방안 모색을 서두르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해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나라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연인 즉 또 얼마나 그럴싸한가. 나라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5년간 해산율을 높이기 위해 무려 19조 7648억 원의 예산을 썼다. 주로 저소득층의 양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일에 예산의 83%가 쓰였다. 그런데도 어쩐 일인지 해산율은 갈수록 떨어져 지난해에는 합계해산율이 1.15명까지 낮아졌다. 돈만의 문제가 아닌 듯싶다.

이로 인한 우리 정부의 고민이 외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모양이다. 최근 한국의 해산율 장려정책에 대해 두 명의 외국인이 각기 다른 해법을 조언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한 사람은 '제한 없는 성장의 필요성'을 전제로 한 해산 장려정책은 문제 해결방식이 아니라는 견해를 편 자유기고가 '릭 러핀'이고, 다른 한 사람은 '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낮은 해산율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이다.

러핀은 최근 국내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세계 평균의 열 배가 넘는 한국의 높은 인구밀도를 상기시키며 인구 증가정책 자체에 회의적인 생각을 보였다. 한국은 주차장이 부족해 출근길 남의 차를 밀어내야 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지적한 뒤, 늘어나는 인구 때문에 국토가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일자리조차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한편,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인구변동 전망 및 향후 대응방안'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방한한 콜먼은 노동·교육·가사·결혼 등에 관련된 후진적이고 전통적인 인습이나 문화가 해산율을 높이는 데 걸림돌임을 지적하고, 일종의 '문화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는 소식이다.

러핀이나 콜먼의 견해는 모두 우리나라 인구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콜먼의 주장이야 처음부터 해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전제로 한 것이니 해법이 다소 다른 듯해 보이지만 인구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하려는 태도를 경계하고 있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인구정책이 능사가 아님을 지적한 러핀의 생각은 백 번 옳다. 아이 낳는 일을 국가 노동력이나 소비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콜먼의 지적 또한 '지당한 말씀'이다. 해산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잣대만 가지고 접근해 온 정부가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설령 경제적 잣대만 놓고 봐도 해산율의 증가가 문제해결의 왕도인지도 따져볼 일이다.

정부는 항상 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적 부담만 강조해 왔을 뿐 인구 '과잉'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부담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바로 인구과잉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말이다. 환경 또는 환경문제에 관련된 일반적인 정도의 상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인구의 감소 또는 증가가 인류의 미래에 미칠 영향이 어떻게 다를지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인구의 감소는 다만 경제적 고통을 초래할 뿐이지만 인구의 증가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재앙을 초래한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 인구수를 넘어선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이로 인한 '재앙' 또한 인류가 확인할 수 있는 가시권 안에 나타난 지 오래된 일이다. 인구 감소가 불러올 고통은 일시적이며 참고 견딜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인구 증가가 가져 올 재앙은 영구적이며 회복 불가능한 수준이다. 저해산율 정책, 근본부터 다시 따져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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