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제빵왕에 대한 기억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밖]제빵왕에 대한 기억

  • 승인 2010-08-04 12:25
  • 신문게재 2010-08-05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별별 심리학이 다 있다. 붕어빵을 머리부터 먹으면 낙천가, 꼬리부터 먹으면 신중파. 지느러미부터 먹으면 신경질적, 배부터 먹으면 활동적. 그보다 붕어빵은 세월이 가고 식성이 변해도 거부감이 없다. 프랑스 제빵왕 리오넬 푸알란이 정의한 '복고혁명', 맛의 갱신은 불필요하다. 바게트와 깡파뉴(프랑스), 치아바타(이탈리아)보다 좋은 '철판요리 생선구이' 붕어빵. 언제나 배부른 국민간식.


주식으로서의 '빵'은 음식 전체를 가리키는 대유법(代喩法)이다. 빵은 길을, 밥은 마을을, 아니 이 둘은 역사를 만든다. 러시아 3월혁명도 내막은 빵 때문이었고, 인간 지뢰제거기였던 옛 소련군 병사들이 걸머진 것도 빵이었다. 현실에서 빵은 양식이며 이데올로기다. 어떻게 배불리 먹을까는 둘로 대별된다. 첫째는 있는 빵을 고루 분배한다. 그러나 빵을 못 키우는 게 한계다. 둘째는 빵을 키워 몫몫을 나눈다. 빵 크기는 커지나 이번엔 분배의 공정성이 한계다.

괴테의 명언 4종 세트에도 빵이 들어 있다. '아름다움은 어디서나 환영받는 손님이다.' '당신이 자신을 믿으면 어떻게 살지 알게 된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고 견뎌야 할 때는 견뎌라.' '눈물로 빵을 먹은 적이 없는 자는 침대에 앉아 슬픈 밤을 눈물로 보내며….' 마지막 것은 굶주린 자에게 모독일 수 있다. 빵 없이는 못 살지만 빵만으로 살 수도 없다. 영화 '빵과 장미'에서 빵은 생존권, 장미는 행복추구권이다.

이때의 빵은 성심당 창업주 임길순 회장의 빵에 상당히 가깝다. 무슨 빵인고 하면, 그 옛날 미군정 배급 밀가루로 대전역전에서 찐빵을 만들던 시절부터 지금껏 이어진 기부용 빵이다. 20년 전 임 회장 생전에 필자가 인터뷰했을 때는 “풀빵집”으로 들었고 그대로 인쇄됐다. 작고한 창업주가 실향민이고 지금은 새터민에까지 남은 빵이 건네지니 인연은 인연이다. 공간적으로 성심당과 주교좌성당이 마주한 것 자체도 '스페이스 마케팅'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생전의 창업주가 아들이라며 내게 소개했을 당시의 젊은이가 현재의 임영진 사장이다. 그를 다시 본 건 옥천 청산면(빵집)과 청남대(회장 자택) 등지에서 찍는 '제빵왕 김탁구'와 관련한 취재 영상을 통해서다. 그때나 지금이나 손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몽글몽글한 감촉과 포근한 향수가 빵에서 느껴진다. 관계와 단어로 이뤄진 의미기억과 다른 자전적 기억,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들렌이 과자를 맛보다가 반추한 유년과 유사한 일화기억이다.

현실과 드라마 속의 남다른 제빵철학. 하나 드라마 설정은 드문드문 불만스러웠다. '대장금'류 요리 경합도 빈약했고 제빵 스킬이 나올라치면 피 터지고 사고 나기 일쑤였다. 빵은 언제 굽나, 아쉬움을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을 보는 맛으로 달랜다. 탁구와 마준의 대결에서 '식객' 성찬과 봉주의 요리대결을 그려본다. 순종 임금을 울린 '비전의 쇠고기탕'이 시시풍덩한 육개장이었듯 반전이 기다릴 것도 같다. 평생 밭 가는 민초의 쇠고기, 조선인 기세가 든 고추기름, 어떤 병도 이겨내는 토란대, 질긴 생명력의 고사리 등 육개장의 마음을 읽고 왕은 마침내 울어버렸다.

그 같은 미각 경험의 공유가 있을지, 있다면 어떨지는 작가의 영역. 다만 기교보다 기본이라는, 현상과 내면의 본질이 좋은 빵을 만든다는 너무 착한 줄거리로 흐르지 않을지 약간은 불안하다. 내 빵을 남 주면 영혼의 빵이 된다는 기적과 권세의 담론, 미녀같이 날씬하고 섹시한 빵도 사양하겠다. 무엇이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에 부합할 것인가. 팔봉제과점의 제빵 배틀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