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수해가 일깨우는 가르침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종성]수해가 일깨우는 가르침

[기고]김종성 충남도교육감

  • 승인 2010-08-02 14:19
  • 신문게재 2010-08-03 20면
  • 김종성 충남도교육감김종성 충남도교육감
어릴 때 가뭄이 들면 변변한 양수기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논바닥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르신들은 “비님이 내리시지 않는다” 하여 비를 높여 표현하곤 했다.

▲ 김종성 충남도교육감
▲ 김종성 충남도교육감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그만큼 어렵고 소중하게 여겼다. 반대로 큰비가 지나고 나면 넘실대는 흙탕물에 논밭은 할퀴고 찢겨지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냇둑의 맨 위까지 동강난 나무줄기나 뽑혀진 나무뿌리가 걸려 있었다. 이는 물이 얼마나 많이 흘러내려갔는지를 짐작하게 하곤 했다. 수위와 수량을 가늠해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며칠 전 서천과 보령 등 서해안 지역에 한 시간에 300가 넘게 비가 내렸다. 그야말로 물폭탄이었다. 대단한 수량이었고 배수될 여유도 없었다. 어린 시절 주위 어른들에게 외경의 대상이었던 '비님'의 큰 울림이었다. 그래서 예부터 치수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 했던가?

곧 학교의 수해 현황이 올라왔다. 교실 침수 피해도 있었고, 옹벽 붕괴도 있었다. 산사태로 인한 토사가 유실된 곳도 있었다.

다음날 수해를 입은 학교 현장으로 달렸다.

처음으로 도착한 학교에는 진입로 근처 울타리 밖 비탈면에 토사가 붕괴되어 있었다. 비가 조금만 더 내렸다면 아래 민가를 덮칠 기세였다. 자연의 힘에 갑자기 몸이 왜소해지는 듯하다. 교육가족 여러분이 나와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스런 것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교직원이 비상근무하며 주민에게 비상상황을 알려주고, 비가 그치자마자 담수된 물을 방류하고 학생들과 주민들을 위해 안전조치를 취했다는 말씀에 '재난상황에 대한 대응이 교육기관으로서 제대로 조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찾은 곳은 전문계 고등학교였다. 이 학교에는 교사동과 실습동 바닥이 침수되는 피해가 있었다. 학교의 지대가 낮고 교실의 높이가 지면과 일치해 피해가 컸다. 교실과 실습실은 물에 잠겨 바닥재 및 실습기자재가 재해를 입었다. 아직도 물이 덮쳐간 자리에는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방학 중이었지만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등교해 물을 퍼내고 기자재를 높은 곳으로 옮기기에 바빴다고 했다. 침수 모습 사진을 보니 흙탕물 바다가 따로 없었다. 교실동 사이의 물에 잠긴 구역을 보니 거대한 배수로 같다.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합세하여 물을 퍼내는 사진에는 너무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모두가 학교를 내 집처럼 여기는 애교심을 느낄 수 있었다. 수해로 잃은 것보다 오히려 학교를 위하고 교육을 위해 어려울 때 함께하는 소중함을 얻은 듯하여 뿌듯했다.

다음에 찾은 학교에는 기숙사 뒤편 비탈면의 토사가 두 곳 유실되어 있었다. 물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언덕엔 산사태라 할 정도로 흉했다. 다행히 나무들이 토사를 어느 정도 떠받치고 있었다. 기숙사 학생을 대피하고 추가피해를 예방한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많은 선생님들이 나와 있는 모습이 수해 복구 의지를 보여 주는 듯했다.

교육청에 돌아와 수해를 입었지만 방문하지 못한 학교의 교장선생님들께 위로와 격려의 전화를 드렸다. 보령의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은 선생님들과 함께 억세게 비가 퍼붓는 모습을 보며 새벽 3시까지 학교를 순찰하며 지켰다고 했다. 뭉클하고 뿌듯했다. 어려울 때 함께하는 교육가족이 동행하기에 학교는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년 재난에 대응하는 훈련시간을 갖는다. 과거 중국의 쓰촨성에서 지진이 났을 때 많은 학교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안전시설과 방재훈련이 잘 되어 있었던 한 학교에서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한다. 다시금 유비무환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제는 우기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됐다. 폭염 속에서도 수해 현장을 원상으로 되돌리고 더 나은 교육현장을 이루려는 교육가족에게 감사한다. 더욱 안전하고 쾌적한 교육환경 속에서 즐거운 교육활동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속히 수마를 딛고 꿈과 열정, 사랑이 가득한 행복한 학교에 배움의 향기가 가득하고 웃음꽃이 활짝 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수해를 입은 지역의 주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3.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4.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5.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