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양천경찰서에서 조사받은 피의자들을 면담하여 발표한 내용이다. 조사 결과 32명 중 22명이 경찰로부터 심한 고문과 구타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독재 시절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인간성을 말살했던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정치문화의 대표적 산물인 '고문'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공권력에 의한 고문이 자행되고 있나 해서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를 통해 이를 확인하였고, 고문에 가담한 경찰관 5명을 구속했다.
고문은 국가 권력의 만행이며, 최악의 인권유린 행위이다. 고문은 그 자체로 개인의 신체와 생명을 훼손하는 잔혹한 범죄행위이지만 무고한 개인에게 억지로 죄를 덮어씌운다는 측면에서 이중의 범죄행위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문명사회라고 말하려면 국가권력에 의한 고문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우리를 분노케 하는 또 하나의 일이 있다.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한 민간인을 불법으로 사찰한 이른바 '민간인 사찰사건'이다. 그 과정을 보면 직권 남용·강요·업무 방해 등 온갖 불법이 자행되었고, 공권력에 의해 개인은 철저히 망가지고 있었다. 피해자 김종익 씨는 한 개인의 삶을 파괴한 대한민국 정부와 공무원을 고발한다고 하면서, 도대체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읍소하였다.
이 문제를 따지는 국회 상임위원회에 앉아 있다가 자기 답변 차례가 오니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가는 이인규 지원관이라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공무원인가? 어디 있는지 찾아오라는 국회의원의 호통에 배탈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으로 보고하는 모습에서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 어렵게 쌓아왔던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이명박 정권 들어 심각하게 훼손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를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가 '국경없는 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화 지수'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에 69위를 기록해 전년에 비해 22계단 추락했다.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39위, 2006년 31위였던 데 견주면 현 정권 들어 언론 자유가 얼마나 악화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비전인 '선진화'란 무엇인가? 역사가 앞으로 전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은 역사의 전진이 아니라 역사의 후진이요 퇴행이다. 국가기관에 의해 고문이 가해지고, 민간인에 대한 불법 사찰이 이루어지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상황에서 '선진화'는 허구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 정부와 다른 견해를 표현했다고 하여 국무총리와 집권 여당의 대표가 당신은 어느 나라 국민인가라고 힐책하고, 그것도 모자라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수사하는 나라는 우리가 꿈꾸는 '선진' 국가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시간은 어디에 맞춰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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