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 코브는 다른 사람의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훔치는 ‘추출자’다. 아내를 죽인 범인으로 지명수배자가 된 그는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생각을 훔치는 일이 아닌 주입시키는 작전, 즉 ‘인셉션’을 수행한다. 꿈속으로 들어간 그는 꿈속에서 다시 꿈속으로 또 다시 꿈속으로 들어간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림보, 토템, 킥 등 낯선 용어들이 수시로 등장하고, 보고 있는 화면이 꿈인지, 꿈속의 꿈인지, 꿈속의 꿈속의 꿈인지 헷갈린다. 이중삼중 나선형으로 겹쳐진 미로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그런데 계속 보고 있자니 이게 웬일. 그 난해한 미로 속을 잘도 따라가고 있지 않은가.
'인셉션'은 복잡한 영화다. 꿈과 상상, 생각에 대한 여러 가지 설정들이 매우 정교하게 얽혀있고, 꿈이 다 그렇듯 사건들은 동시다발적으로 포개진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훌륭한 안내자다. 관객들이 자신이 설계한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꽤 공을 들인다. 조곤조곤 설명하고 꿈에서 꿈의 꿈속으로, 또 꿈의 꿈의 꿈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명확하게 다른 공간 배경을 만들어 이해를 돕는다. 그의 안내를 따라가기만 하면 결말까지 동행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가벼운 영화는 결코 아니지만 영화 감상을 방해한 건 영화가 아니라 어려울 거라는 지레짐작이었다.
꿈이라는 소재와 공간 배경을 벗기고 보면 아주 단순한 영화다. 서사라고 해봤자 실수로 가족을 잃은 한 남자가 상처를 극복하고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얼개도 따지고 보면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하이스트(Heist)' 장르다. 노련한 전문가들이 팀이 되어 카지노의 금고를 터는 거나 꿈속에 들어가 생각을 조작하는 거나 다를 게 없다.
액션도 그렇다. '미션 임파서블' '본 얼티메이텀' '007 시리즈'에서 이미 본 것들이다. 단순한 이야기, 익히 봐온 장면들은 이 복잡한 영화에서 퍼즐 조각을 조금 놓쳐도 곧 따라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다 하더라도 꿈에 대한 꿈의 프로젝트 '인셉션'을 꿈을 빼놓고 설명할 순 없다. 이 영화가 경이로운 건 꿈의 세계를 정말 꿈을 꾸는 듯 스크린에 구현해 놓은 정교한 설계술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단순히 꿈의 세계가 아니라,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꿈속의 꿈속에서 또 다시 꿈을 꾸는 다층적인 세계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단계마다 등장하는 '펜로즈 무한계단'을 연상케 하는 건물, 물리학의 법칙이 무너진 360도 무중력 액션, 도로를 질주하는 기차 등 초현실적인 비주얼은 상상 이상의 것이 아니라 상상의 끝을 보여준다. 특히 거대도시가 폴더 휴대전화 접듯 접히는 장면은 압권이다.
몰라도 즐기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낯선 단어나 몇 가지 정보를 알고 가면 쉽게 관람할 수 있을 듯하다. 림보는 헤어나오기 힘든 꿈의 밑바닥, 토템은 다른 사람의 꿈속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물건, 킥은 강제적으로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방법을 일컫는 용어다.
꿈속에 들어간 주인공은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 움직여야 한다. 꿈을 꾸는 동안 두뇌활동은 평소의 스무배로 빨라지고,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속도는 배가 된다. 이를테면 현실의 10초는 첫 번째 들어간 꿈속에서는 3분, 꿈속의 꿈에서는 60분이 된다. 머리를 계속 써야 하고 집중력도 필요하다. 끝나는 시점까지 '억'하는 감탄사가 이어진다. 외신들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이다.
놀란 감독도 인터뷰에서 “모든 영화 그 위에 영화”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꿈속에서 꿈속으로 이중삼중으로 벌어지는 액션 시퀀스와 이야기의 영화적 아귀를 절묘하게 맞추는 솜씨는 일급이다. 비주얼도 초특급 블록버스터의 위용을 자랑한다. 그러나 놀란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최고의 것들을 죄다 모아놓았다고 해서 그 총합조차 최고가 되는 건 아니다./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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