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혜]좌충우돌 교사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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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혜]좌충우돌 교사 성장기

[교육단상]김수혜 장항중 전문상담교사

  • 승인 2010-07-20 14:19
  • 신문게재 2010-07-21 20면
  • 김수혜 장항중 전문상담교사김수혜 장항중 전문상담교사
서천 끝자락 바다, 다소 삭막한 바다갯벌과 주인 모를 고깃배가 멈춰있는 곳, 웅장한 조선 크레인이 내려다보이는 충남과 전북의 물길을 잇는 동네, 바로 장항이다. 읍내에서 가장 많은 학생 수를 가진 중학교, 바로 나의 첫 부임지다. 신규발령 받아 이곳에 내려올 때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바닷가 애들은 무지 억세고 무섭다던데… 걔네들한테 쥐어잡히는 거 아니니?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하고 밤늦게 다니지 마라”며 과년한 딸을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눈물이 학교오는 동안 내내 찡하게 아려왔다.

▲ 김수혜 장항중 전문상담교사
▲ 김수혜 장항중 전문상담교사
교장·교감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찾아간 상담실. 아뿔싸 몇 년은 사용하지 않았는지 텁텁한 먼지와 수북한 거미줄이 당당하게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 후로 2박 3일 동안 아이들 얼굴 보기는 커녕 청소만 열심히 했다. 아이들이 문을 열고 “선생님~놀러왔어요” 이렇게 외치길 상상하면서.

하지만 아이들에게 나는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서먹함을 없애기 위해 명렬표를 악보삼아 전교생 이름을 중얼중얼 랩처럼 외우고 다녔다. 점심시간마다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인사하니 검게 그을린 얼굴이 활짝 핀다. 마치 한송이 꽃 같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아이들은 내 가슴속의 영원한 꽃이 된다. 아이들이 착한 일을 하면 장미, 백합으로 보이고 가끔 말을 안 들을 때엔 호박꽃, 할미꽃으로 변신한다.

하음이, 언제나 패션에 관심이 많은 아이. 오늘은 머리를 염색했다면서 자랑을 한다. 영원이랑 과산화수소와 맥주로 염색을 한 듯 싶다. 야단쳤더니 “쌤, 이쁘니까 질투하는 거죠?” 하면서 쪼르르 도망간다. 가족문제로 상담을 청한 하음이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산다. 할머니는 다리를 다치셔서 일을 못하신다.

정부에서 주는 적은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가족상담을 위해 방문했을 때에 할머니는 천에 싼 조그만 주머니를 보여주셨다. 주머니 안에는 100원짜리, 50원짜리 동전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3000~4000원은 족히 되어 보인다. 하음이가 할머니 생신 케이크를 사기 위해 모은 거란다. 엉뚱한 짓만 하는 줄 알았는데 자식 제법 속이 깊다. 다음 날 하음이에게 머리색과 어울리는 머리핀을 선물로 주었다. 머리핀이 마음에 안 든다는 둥 촌스럽다는 둥 투덜대더니 잘만 꽂고 다닌다. 하음이의 투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친구를 때렸다는 이유로 학생부에서 강제로 상담실로 오게 돼 불만이 많았던 민기. 가계도를 그려보니 부모님이 따로 산다.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어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단다.(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건물은 모성을 상징한다. 민우는 꿈이 건축가라고 하는데 이는 모성을 보호하고 싶은 민기의 마음이 투영된 듯하다)

먼저 진로검사와 학습유형전략을 통해 민기가 자아효능감을 갖도록 지도했다. 특히 민기에게 가장 중요한 '어머니와 함께 살기' 목표를 가지고 공부할 수 있게 도왔다. 우리학교에는 한부모 가정이 참 많다.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것은 아이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이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더 도와줄 수 없어 안타깝다. 민기는 현재 운동도 하고 건축설비기사를 따기 위해 공부 중이다. 이 녀석이 삐뚤어지지 않게 지켜보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고군분투하던 한 학기가 어느덧 방학을 향해 가고 있다. 아직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데 아이들은 그래도 선생이라고 나를 따르고 있다. 참 부끄럽다. 아이들을 경계하던 첫 달 내 모습을 생각하면 두 볼이 화끈거린다. 아픔을 간직하고도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아이들, 하나하나 보듬어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름이 되고 싶다. 아직 퇴비로 쓸 만큼의 연륜과 노하우는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새내기 교사에겐 무엇보다도 빛나는 열정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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