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창희 ETRI 기술전략연구본부장 |
창의적 역량의 습득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체화되는 것이지만, 최근 과학기술계에서는 인문학과의 만남을 통해 상상을 현실로 바꾸기 위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의 예는 많지만 해저 2만리라는 소설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From the earth to the moon)'라는 소설에서 착안해 시작된 '바빌론 건(Babylon Gun)' 프로젝트도 대표적 예의 하나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 무기개발의 명분을 잃어버린 대포클럽 회원들은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상천외한 프로젝트를 생각해 내는데, 대포가 쏘아 올린 포탄 속에 타서 달나라로 가는 것이다.
인간의 오랜 염원이었던 우주여행은 비행기의 발명과 아폴로 우주선의 달 탐사 이후 가속화 되고 있으나, 고도의 과학기술과 우주선의 제작 및 발사에 따른 비용부담이 늘 문제가 되고 있다. 대포를 이용해 물체를 우주궤도에 진입시키는 것은 획기적인 비용절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혁신적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바빌론 건 프로젝트는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주의 깊게 관찰하던 여러 국가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판단에 따른 연구책임자의 죽음으로 성공을 목전에 두고 중단됐지만, 자유로운 상상과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IT 분야에서도 이러한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혁신적 발상은 평범하지만 이용자들에게 편리함과 재미를 제공함으로써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시작됐다. 이제 애플과 구글은 물론 삼성전자와 소니 등이 스마트폰에서 촉발된 상상력의 힘을 다른 분야로 확대시켜 나가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중심은 단연 모바일과 TV가 될 전망이다.
모바일의 경우 이미 스마트폰을 통해 그 위력이 발휘되었지만, 해외여행이나 비즈니스시에 언어간 장벽이 없게 된다는 상상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자동통역전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구글이 앞장서고 있다.
TV는 아바타의 흥행 성공과 남아공 월드컵 경기의 3D방송 중계로 사실감과 현장감, 충실감을 만끽할 수 있는 3D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에는 리모컨도 불편하다는 상상과 욕구를 구현하기 위해 인간의 제스처를 인식함으로써 TV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 등 인체인지 기술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서, '바보상자'라고 불리던 TV가 '만능상자'로 변모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주목받는 다른 시스템은 '텔리프레즌스(Telepresence)'다.
그동안 화상회의시스템은 비용과 화질, 사실감 등의 문제로 크게 보급되지 못했지만, 최근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면서 저탄소 시대를 열어가는 핵심 시스템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사이버세상과 현실세계를 잇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상상을 현실화시킴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구현기술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술들은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우리가 미래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선행돼야 하며, 이것이 바로 미래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미래전략으로는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비전이 제시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나, 비전 구현을 위한 혁신적인 나침반은 아직까지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비전 구현을 위한 창의적인 상상력의 발휘가 무엇보다도 절실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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