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현은 거침없고 짓궂은 아이였다. 맨 손으로 산 뱀을 잡아서 목에다가 목걸이를 하고선 교실을 뛰어 다녔다. 말보다는 주먹을 먼저 뻗는 성질머리였지만 여학생들을 때리는 법은 없었다. 크고 힘이 센 녀석들하곤 결기 있게 무시로 다투었다. 그러나 심약하거나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건드리진 않았다. 우리들이 읍내 출입을 두려워 할 때 초등학생 우승현은 달랐다. 면사무소 근방의 연어급 건달이든 군청 주위의 상어급 깡패든 아랑곳하지 않고 우승현은 버스를 타고 내려서 읍내를 활보했다. 상대방이 누구든, 주먹의 성질이 어떠하든 우승현은 '준비된 싸움'을 무장하고 있었고 크고 작은 얼굴의 상처들은 작지만 강한 우승현의 아이콘이었다. 열 명의 상어급 깡패와 혼자 세 시간동안 혈투를 벌이고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우승현이었다. 우승현은 겁이 없었다.
그런데 단 한번 우승현의 겁먹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몇 년전 제주도에서 학회가 열렸을 때 성산포에 사는 우승현을 찾아갔었다. 동료 선생님에게 우승현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는데 웅숭 깊은 그 선생님은 우승현과 술 한잔 하고 싶다며 동료 몇 사람을 데리고 왔다. 낯선 땅에 낯설지 않을 정도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용감한 우승현도 선생이 여러 명 찾아온다고 하자 그 때는 겁을 먹었다. '말빨이 딸려서' 겁이 난다며 급히 말 방패를 해 줄 '지식인 형님' 한 분을 모셔왔다. 지식의 양도 물론 무량했지만 '형님'은 사람을 품어주는 덕성이 더 넉넉해 보이신 분이었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우승현과 고등학교를 졸업한 형님, 그리고 박사학위를 가진 여덟 명의 교수들이 성산포의 한 음식점에서 밤이 깊어 새벽이 희붐하게 열릴 때까지 다정한 '말 전쟁'을 벌였다. 애면글면 살아 온 이야기, 이악스럽게 살아가는 살뜰한 이야기들로 대화는 차고 넘쳤다. 학벌은 사람을 경계시키지 못했다. 그들 모두가 자랑스럽고 감사했다.
중학교에 가지 못한 우승현은 갈치잡이 배의 애숭이 선원이 되었다. 그물에 말린 손가락 하나는 청년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우승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언 바람 먼 바다에서 그렇게 번 돈을 우승현은 자기보다 더 가난한 동갑내기 친구의 학비로 보냈다. 등록금 뿐만 아니라 기죽지 말라며 친구에게 새 옷을 사 입히고 구두를 사서 신겼다. 대학생이 된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숨질 때까지 우승현은 그의 유일한 후원자였다. 우승현이 친구의 학비를 지원해 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필자도 이십년이 훨씬 지난 뒤에야 겨우 알게 되었다.
어부 우승현은 제주도 성산포에서 갈치와 고등어를 잡는다. 많이 사그라들긴 했지만 지금도 주먹이 말보다 빠르다. 갓잡아 온 싱싱한 갈치를 친구들에게 먹이고 싶다는 이유로 성산포에서 제주공항까지 비행기 질주하듯 과속운전 하기를 일삼는다. 한꺼번에 대여섯번의 과속딱지를 받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무대포'이고 친구들이 비행기 놓칠까봐 공항 출입구 '주차금지' 푯말 앞에 떡하니 주차를 하는 '무뢰한'이다.
그런 소소한 일탈에도 불구하고 학벌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데 익숙하고 특정한 학벌을 내세워 국정을 농단하려는 무리들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초등학교 졸업생 우승현은 빛나는 보석이다. 어부 우승현은 국가권력 질서의 기강을 흩트리거나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을 배가시키는데 동참하지도 않는다. 7t짜리 진풍호를 몰고 나가 묵묵히 바다 밑의 물고기를 건져올릴 뿐이다. 갓 출범한 민선의 도정이나 시정 역시 언제든 특정 학교의 동창임을 내세워 권력사유화에 동참하려는 모리배들로 혼탁해질 수 있다. 많이 배운 '학벌'이 허투루 쓰이지 않게 모두가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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