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연형 천양원 원장·대전사회복지협의회 수석부회장 |
이처럼 약속이란 다른 사람들과 언어로 또는 문서로 맺는 계약적 약속이 있는가 하면, 또 하나 더 자기 자신과 맺는 약속이 있다. 자기 자신과 맺은 약속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건사고들은 불완전한 인간이 서로 만들어 놓은 약속을 깨뜨리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약속 어음이 깨지고, 믿고 있던 당좌수표가 부도나 오늘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분통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기도 한다.
정치권을 보자. 국가나 지방의 장래를 심사숙고하지 않고 사탕발림성 공약(公約)으로 표를 얻고난 후 그에 대한 책임을 질줄 모르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가. 지지난 대선땐 충청권의 표를 의식해 투표일 4~5일전에 수도이전 공약을 내놓아 어느 특정 정파는 재미를 보았지만, 수도이전 문제가 위헌으로 판가름나자 공약(空約)이 돼버렸고, 급기야 이 문제로 국론이 분열돼 온 나라가 큰 갈등에 빠지기도 했다. 필자는 이러한 세태를 보면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두 인물에게서 교훈을 얻고 싶다.
일주일 전 육군항공학교에서 항공 준사관으로 임관한 전기엽 준위는 1992년 초등학교 4학년 때 폭우로 인해 50여명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익사직전의 상태에서 202항공대대 조종사, 서승철 준위의 긴급출동으로 구출됐다고 한다. 구출된 이 학생은 “나도 커서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구조하는 헬기조종사가 되겠다”고 자신과 약속을 하게 되고 20년 만에 그 약속을 이뤄냈다. 참 멋진 사람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지난달 69세로 별세한 어린이재단의 고 김석산 회장이다. 김 회장은 6·25 전란 속에서 부모를 여읜 고아였지만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고 당당하게 큰 인물로 우뚝 서 소외된 자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는 한국 사회복지의 산증인이자 소외된 아이들의 아버지 역할을 해왔다. 1963년부터 48년간 어린이재단에 몸담으면서 지금까지 8300여명의 미아들에게 가족을 찾아 주었고, 152만여 빈곤아동의 자립을 도왔을 뿐 아니라, 2001년부터는 북한 어린이를 위해 70여억원을 지원했다.
또 캄보디아 등 동남아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수단의 아동들까지 지원했다. 'KBS 사랑의 리퀘스트'를 통해 난치병 치료비 지원, 빈곤가정지원 등은 대단히 큰 업적이다. 아동시설인 천양원에서 자란 고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커서 나처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살겠다”고 자신과 약속을 했었노라고 고백했다. 장례절차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수 많은 조문객들이 그의 타계를 크게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처럼 사람이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대단히 아름다운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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