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Baroque)라는 단어는 모양이 일그러진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유래한 프랑스어로, 음악에서는 이전 시기 르네상스 음악과 비교하여 과장되고 괴상하다는 의미로 적용됐다. 용어 자체는 19세기 미술사가들이 만들었는데 20세기 음악사가들이 1600년대부터 1750년 사이 시기를 지칭하기 위해 차용한 것이다.
바로크 음악이 기괴하면서도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 전에 절제 있고 균형 잡힌 음악이 있었음을 전제한다. 그 차이는 골리앗을 돌로 치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순간을 조각으로 표현한 다비드상을 생각하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기 미켈란젤로의 '다비드'(1501~4)는 고상하고 침착함을 보여주지만, 바로크 시기 베르니니의 '다비드'(1620년경)는 꽉 다문 입술과 돌 던지는 순간의 움직임으로 역동성과 극적 정서를 너무나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시각적 표현을 청각적으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나타날까? 르네상스 음악에는 흔히 생각하는 음의 강약이 없었다. 마치 강물이 유유히 흐르듯이 여러 성부가 서로 얽혀서 움직이는 성악 음악은 차분하고 조화로운 음색으로 단아하고 사색적인 느낌을 준다.
반면 바로크 음악은 크고 작은 셈 여림이 삽입되고 성악과 기악 음악이 서로 앙상블을 이루면서 역동적이고 활기찬 음악, 악기와 목소리 간의 경쟁이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음악으로 바뀌었다. 정적인 음악에서 극적인 음악으로의 변화는 오페라라는 장르를 탄생시켰고 이러한 변화는 기악 음악, 교회 음악에까지 퍼져 나갔다.
예컨대 17세기 초 이탈리아 출신 몬테베르디는 오페라 '오르페오'로 극적 양식인 오페라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었고, 17세기 중반 이탈리아 출신으로 프랑스로 귀화한 륄리는 루이 14세의 강력한 후원으로 프랑스 오페라의 선구자가 되었다.
자칭 태양왕으로 신화 속의 아폴로와 동일시했던 루이 14세는 절대왕권을 휘두른 정치적인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상 본인 자신이 뛰어난 무용수로서 춤과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루이 14세의 절대적 지지로 음악적으로도 똑같이 절대 권력을 행사한 륄리의 음악은 프랑스 바로크의 전형적인 특징인 위엄과 장대함을 품고 있다. 륄리의 음악을 들으면 커다란 가발을 쓰고 화려하게 치장한 루이 14세 왕이 지금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한편 르네상스 시기 성악음악보다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졌던 기악음악은 바로크 시기 악기의 개량과 발달로 주옥같은 작품을 창작할 토대를 만들었다. 그 유명한 바이올린 명기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가 이 시기 이탈리아 현악기 가문에서 제작되었고, 품질이 탁월한 악기는 뛰어난 연주자와 작품을 배출하였다.
바로크의 대표적인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가 빚는 섬세하고 장식적인 음향과 오르간의 웅장한 음색, 첼로의 전신인 비올이 만들어내는 달콤한 음악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바로크 음악의 정수로 듣는 비발디의 4계, JS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과 독주곡, 그리고 헨델의 웅장한 합창과 서정적인 오페라 아리아는 바로 이러한 바로크의 특징이 세련되게 갈고 닦아 나온 마지막 결정체이다. 18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이 세 사람은 17세기 바로크의 모든 장점과 특성을 자신의 작품에 융합하여 바로크의 특성을 종합한 음악가들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바로크 음악을 기괴하고 과장됐다는 원래의 바로크란 용어의 의미로 듣지 않는다. 르네상스와 비교하여 상대적인 개념의 바로크 음악이지만, 우리에게는 멋진 클래식이자 지극히 아름답고 조화로운 음악이기에 더욱 그렇다. /오지희 백석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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