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일제의 정착과 지방 자치 활성화로 인해 지역마다 수준 높은 문화예술 시설과 콘텐츠를 갖추게 되면서 이제 우리 삶에 있어 문화 생활 영위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 이응노 작가의 대표작 '군상' |
이응노 작가의 대표작 군상이다. 이 그림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월드컵을 응원하는 우리들이 어우러져 추는 축제의 춤으로 여겨지는가? 인간들이 싸우는 모습, 전쟁 중의 육탄전으로 보이는가?
혹은 현대적 디자인 감각을 표현한 세련되고 재미있는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는지.
이는 모두 이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던 관람객들이 내게 들려준 감상 내용이다. 심지어는 그림들을 한번 쓱 보고 나서 낙서 같다고 표현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고암이 겪었던 한국사의 질곡과 사회의 모순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난 뒤에 다시 작품에 대한 감상을 물어보면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감상이 돌아온다.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이라는 평도 들을 수 있었고, 그 선들이 자아내는 생존의 몸부림과 자유의 의지에 눈물을 글썽이는 관람객을 만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미술관을 방문해 그림을 감상하는데 있어 작품에 관한 지식은 필수적인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먼저 미술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사전적 의미로의 미술은 공간 및 시각의 미(美)를 표현하는 예술이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존재하는 대상을 놓고 우리는 왜 감상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수준 높은 문화생활의 영위를 위해서는 미술관을 찾기 전에 가능한 많은 지식을 예습해 두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사전지식이 꼭 필요한 그림이 있을 수 있다. 기독교 미술이나 불교 미술관의 전시를 보러가는 경우에 그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절대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경우에는 정확한 정보에 의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작품 감상을 하는 것이 올바르게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바람직한 방법이며, 감상자 입장에서 감상을 위한 객관적인 지식이 필요한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모든 그림이 그런 것은 아니다. 프랑스 화가인 피에르 술라주의 경우 오직 검정색 만을 화면에 칠하는 작업으로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그는 자신의 작품에 아무런 제목도 의미도 부여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그림을 두고 미학적 혹은 미술사적으로 해석하려는 전문가들의 관점을 거부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예술은 그 자체로 존재 하는 것이고, 그에 대한 의미 부여는 관람자 각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감상법과는 대비되는, 주관적 입장에서 미술 감상을 요하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작품 감상법은 과연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정답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결과로서, 작품을 최대한 즐길 수 있는 최선의 전시 감상 방법을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어떠한 사전 지식의 습득이 없이 순수한 자신만의 눈으로 작품을 감상한다. 대표작에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자신의 선호에 따른 감상을 일차로 끝내고 나면, 다시 해설자의 설명이나 도록을 참고하며 두 번째 감상 시간을 갖도록 해본다. 최초 관람에서 느꼈던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전문가의 설명과 비교해 보며 차이점과 공통점을 발견하는 경험은 자신만의 특별한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정리된 시각을 갖고, 최종적으로 전시를 한 번 더 관람 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안목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최상의 마무리가 된다.
이런 감상법에 대해 소개할 때마다, 많은 관람객들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무리라는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의 평균 감상시간은 1시간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당장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공연만 보더라도 2~3시간은 기본으로 소요된다. 물론 전시 관람은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미술관에는 지친 다리를 쉬게 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즐거운 것이 바로 그림 감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의 감상방법을 통한다면, 단순히 가볍고 재밌는 시각으로 스쳐 지나가며 봤던 작품은 배경지식이 더해지면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인생 최고의 작품으로 바뀔 수도 있으며, 후에 전시에 대한 기억을 보다 쉽게 떠올릴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또한 감상자로 하여금 대상의 본질을 알고 나면 그것을 몰랐을 때와는 자신의 시각이 확연히 달라짐을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더욱 넓혀 주는 기능을 할 수도 있다. 타인의 설명에 처음부터 의존하기 전에, 우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상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시 관람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며 여유롭게 즐겨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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