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봉]아이, 재수 없어!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태봉]아이, 재수 없어!

[교육단상]이태봉 충남여고 교장.수필가

  • 승인 2010-07-13 13:59
  • 신문게재 2010-07-14 20면
  • 이태봉 충남여고 교장.수필가이태봉 충남여고 교장.수필가
한 농촌 마을에 부지런한 농부와 게으른 농부가 살고 있었다.

부지런한 농부는 겉으로 보면 어리뜩해 보일 만큼 일밖에 몰랐다.

▲ 이태봉 충남여고 교장.수필가
▲ 이태봉 충남여고 교장.수필가
한시도 노는 법이 없었다. 여름이 되면 남들이 곤히 잠에 취해 있는 이른 새벽에도 그는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는 지게를 걸머지고 둑에 나가 한 바지게 꼴을 베어 와서 소에게 먹이고는 아침상을 물리치기가 무섭게 곧장 논밭으로 달려가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김을 맸다.

그의 옷은 늘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옷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신체 부위는 흑인의 살색과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부지런한 농부가 해야 할 농사일이란 끝이 없다. 비가 자주 오면 배수로를 깊이 파 주어 물이 잘 빠지도록 해야 하고, 날이 가물면 농작물이 고사(枯死)하지 않도록 논밭에 물 대기, 수분 증발 억제용으로 비닐을 덮어 주거나 풀이나 짚을 지표면에 덮어 주기, 적기에 비료 뿌려 주고 농약 살포하기 등 농부의 손길이 닿지 않고 해결될 일은 없다.

그의 논밭은 늘 정돈이 되고 잡초가 자라날 틈이 없기에 콩, 고구마, 들깨, 수박, 고추 등의 밭작물과 논에 심은 벼 작황이 좋아 다른 집의 작물보다 윤기가 흐르고 잘 되었다.

그는 배움도 적어 특별한 영농법이나 지식이 없지만, 그저 우직스럽게 논밭이 그의 생활의 주 무대로 알고 그의 전부를 쏟아 부었다.

그가 흘린 땀과 소모한 에너지가 헛되지 않고 결실로 나타나, 가을 수확기에는 그의 논밭의 각종 작물들은 옹글게 영글어 수확량도 많고 품질도 뛰어나서 좋은 시세로 팔려 나갔고 그렇게 했어도 남은 곡식이 창고에 가득 쌓였다.

그는 배움은 짧아도 가진 것이 많고 신실하여 동네 사람들도 그를 업신여기지 않았다.

반면 게으른 농부는 되도록 논밭에 나가기를 꺼리고 더위를 피해 시원한 아침 저녁때만 잠깐 일하고 더운 한낮에는 시원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낮잠에 빠져 버렸다.

그의 논밭은 잡초가 무성해 작물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거름도 제때 주지 않아서 농작물은 생기가 없고 병약하니 각종 병충해가 피해 갈 리 없다. 그는 농사의 흉풍(凶豊)은 농사꾼의 노력보다는 다 하늘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추수를 해 보니 수확량이 급감했다. 그는 자신이 실패한 농부라고 인정하고 자성하기는 커녕 긴 장마로 일조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댄다.

학생들이 학교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두 타입의 농부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평상시는 물론 여름방학 중에도 더위와 씨름하면서 방과후 학교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오후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부족한 교과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전자의 농부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이렇게 무더위 속에서도 여름 내내 열심히 땀을 흘리며 노력한 학생들은 영어와 수학 등과 같은 교과 창고에 실력의 알곡으로 넘쳐날 것이어서 보람과 기쁨, 행복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반면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학생들은 자신의 곳간에 채운 것이 없으므로 공허함과 후회와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이 대단히 클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학생들 중에는 시험을 잘못 보았을 때, “아이, 재수 없어!”라는 표현을 쓴다. 시험을 잘 보고, 못 보고는 노력 여하에 달렸다는 인식보다는 단순히 운(運)에 달렸다고 믿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흘리는 땀방울이 자신의 삶에서 풍성한 수확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로또복권이 당첨되는 행운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한없이 세월을 서성이는 젊은이들과 무시로 부딪힐 것만 같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3.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4.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5.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