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찬 목원대 교수 |
축구공은 또한 부유한 나라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인류 평화 대제전이라고 불리는 올림픽 게임의 메달은 부유한 국가들이 독점한다. 국가의 GDP 규모와 메달 숫자에 높은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축구는 그렇지 않다. 빈곤, 기아, 질병으로 허덕이는 검은 아프리카에도 축구 강국이 많다.
가나, 카메룬, 나이지리아가 그들이다. 그리고 중하층 국가들이 많은 라틴 아메리카가 축구의 메카다. 라틴 아메리카 팀들은 적어도 중하층 국가들을 대표하여 선진 유럽 열강들과 최소한 축구에서만은 한판 승부를 겨룰 수 있다. 가난한 나라들이 축구 잔디 그라운드 외에 감히 제1세계와 한판 승부를 겨룰 수 있는 곳이 있는가? 나는 정치학자로서 축구공이 제공하는 이 절묘한 힘의 균형을 즐긴다.
축구공은 그라운드에서 마저도 평등을 추구한다. 축구는 가장 예측이 불가능한 구기 종목이다. “펠레의 저주”(월드컵에서 펠레가 우승후보로 지목하는 팀은 틀림없이 탈락한다)는 축구의 예측 불가능성을 반영한다. 축구 경기에서는 재능보다는 투지력과 팀 플레이가 경기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고, 우연과 운수가 승패를 가르기도 한다.
이번 월드컵의 경우에도 축구 전문가들의 예측력은 그라운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면 뉴스 위크는 브라질, 스페인,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네덜란드, 이탈리아, 미국을 우승후보로 지목하였다. 잉글랜드와 이탈리아는 일찍감치 탈락하였고 이들 중에서 4강까지 살아남은 팀은 스페인과 네덜란드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축구공의 평등주의적 요소 때문에 축구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축구공의 비예측성이 우리를 흥분시킨다. 이제 월드컵은 스포츠 게임일 뿐만 아니라 지구적 이상(理想)이 되어 가고 있다. 월드컵은 친구와 친구, 형제와 형제, 친구와 적이 만나는 매개체다. 인류라는 종(種)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간단한 룰을 지키고 게임결과를 평등하게 나뉘 갖는 것이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축구 경기 룰 처럼, 동료인간들을 발로 차서는 안된다. 무기(손)를 쓰지 말고, 상대방 영토에는 축구공이 없을 경우에는 진입하지 않는 것이 윤리다. 월드컵을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류적 평화의 꿈을 함께 나눠 갖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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