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찬]축구공의 세계 평화 정치학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장수찬]축구공의 세계 평화 정치학

[중도춘추]장수찬 목원대 교수

  • 승인 2010-07-08 14:07
  • 신문게재 2010-07-09 20면
  • 장수찬 목원대 교수장수찬 목원대 교수
나는 축구가 가진 '원초성'을 좋아한다. 여기서 '원초성'이란 축구 경기 룰의 단순함과 게임 성격의 원시성을 의미한다. 축구는 엄격히 말해서, '공에 손을 대지 말 것', '공은 차도 되지만 상대편 선수를 차면 안된다', 그리고 '공보다 먼저 상대 진영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이 세 가지 룰(rule) 외에는 룰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 룰의 단순함은 축구를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용인한다. 그리고 축구 게임은 어디서나 가능하다. 시멘트 위에서나, 모래사장 위에서나, 잔디 위에서나, 진흙탕에서도 가능하다.

▲ 장수찬 목원대 교수
▲ 장수찬 목원대 교수
이러한 축구의 원시성 때문에 축구공은 계급적 차별주의를 거부한다. 골프나 테니스가 중산층 이상의 계급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라면 축구는 어떤 계급이나 계층에도 열려 있다. 아르헨티나의 윙을 맡았던 메시(Lionel Messi), 잉글랜드의 스트라이크 루니(Wayne Rooney), 카메룬의 스트라이크 에토(Samuel Et oo), 브라질의 수비수 메이콘(Maicon), 그리고 포르투갈의 윙을 맡았던 호날두(Cristiano Ronaldo) 모두 하층민 출신이다. 언급된 선수들은 뉴스 위크가 뽑은 지구상의 최고의 축구 귀재들이다. 최고 선수들의 겸허한 배경 때문에 축구는 다른 어떤 구기 종목과 비교하여도 신화와 동화를 생산한다.

축구공은 또한 부유한 나라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인류 평화 대제전이라고 불리는 올림픽 게임의 메달은 부유한 국가들이 독점한다. 국가의 GDP 규모와 메달 숫자에 높은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축구는 그렇지 않다. 빈곤, 기아, 질병으로 허덕이는 검은 아프리카에도 축구 강국이 많다.

가나, 카메룬, 나이지리아가 그들이다. 그리고 중하층 국가들이 많은 라틴 아메리카가 축구의 메카다. 라틴 아메리카 팀들은 적어도 중하층 국가들을 대표하여 선진 유럽 열강들과 최소한 축구에서만은 한판 승부를 겨룰 수 있다. 가난한 나라들이 축구 잔디 그라운드 외에 감히 제1세계와 한판 승부를 겨룰 수 있는 곳이 있는가? 나는 정치학자로서 축구공이 제공하는 이 절묘한 힘의 균형을 즐긴다.

축구공은 그라운드에서 마저도 평등을 추구한다. 축구는 가장 예측이 불가능한 구기 종목이다. “펠레의 저주”(월드컵에서 펠레가 우승후보로 지목하는 팀은 틀림없이 탈락한다)는 축구의 예측 불가능성을 반영한다. 축구 경기에서는 재능보다는 투지력과 팀 플레이가 경기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고, 우연과 운수가 승패를 가르기도 한다.

이번 월드컵의 경우에도 축구 전문가들의 예측력은 그라운드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면 뉴스 위크는 브라질, 스페인,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네덜란드, 이탈리아, 미국을 우승후보로 지목하였다. 잉글랜드와 이탈리아는 일찍감치 탈락하였고 이들 중에서 4강까지 살아남은 팀은 스페인과 네덜란드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축구공의 평등주의적 요소 때문에 축구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축구공의 비예측성이 우리를 흥분시킨다. 이제 월드컵은 스포츠 게임일 뿐만 아니라 지구적 이상(理想)이 되어 가고 있다. 월드컵은 친구와 친구, 형제와 형제, 친구와 적이 만나는 매개체다. 인류라는 종(種)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간단한 룰을 지키고 게임결과를 평등하게 나뉘 갖는 것이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축구 경기 룰 처럼, 동료인간들을 발로 차서는 안된다. 무기(손)를 쓰지 말고, 상대방 영토에는 축구공이 없을 경우에는 진입하지 않는 것이 윤리다. 월드컵을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류적 평화의 꿈을 함께 나눠 갖기를 희망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1.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2.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3.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4.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5. 찾아가는 마을돌봄서비스 ‘마음아 안녕’ 활동 공유회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