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찬]정주영 회장의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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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찬]정주영 회장의 생전 모습

[시론]민찬 대전대 교수

  • 승인 2010-07-07 14:16
  • 신문게재 2010-07-08 21면
  • 민찬 대전대 교수민찬 대전대 교수
정주영 회장의 고향은 강원도 고성군 송전면 아산리다. 그곳에서 정 회장은 가난한 농사꾼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집에서 소 판 돈 70원을 훔쳐 들고 서울로 가출했다. 부기학원을 다니다가 붙들려 귀가조치된 것이 세 번, 마지막 네 번째 가출에 겨우 서울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첫 직장이 안암동 보성전문학교 신축공사장, 그 다음이 용산역 근처 풍전엿공장이었다.

▲ 민찬 대전대 교수
▲ 민찬 대전대 교수
이후 정 회장은 쌀가게 복흥상회의 배달부로 있다가 2년 만에 가게를 인수해 신당동 길가에 경일상회라는 간판을 걸게 된다. 쌀가게를 하며 얼마간 모은 돈으로 고향에 농토를 사고, 남은 돈을 긁어모아 동업자와 함께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열었다. 잠시 황해도 광산에서 일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고, 이듬해인 1946년에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 간판을 다시 걸었다. 이 공업사가 '현대'라는 상호의 시작이었다.

1947년에 현대토건사를 열었고 1950년에는현대토건사와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해 현대건설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해방 직후 국토건설 분위기를 타고 규모를 확장하던 중 1950년 한국전쟁이 터져 또 한 번 시련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피란지 부산에서 한겨울에 보리밭을 떠다가 유엔군 묘지를 푸르게 단장한 일이 있은 뒤부터는 미8군 공사는 온통 현대의 차지가 되었다. 현대의 승승장구가 시작된 것이다.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해 1976년 국산차 제1호 모델 포니를 탄생시킨 과정도 그렇지만 현대조선 설립을 둘러싼 뒷이야기는 신화로 불러도 될 만큼 감동으로 가득 차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끝낸 현대는 쉴 틈도 없이 조선소 건설에 돌입했다. 조선소 부지로 정한 울산의 바닷가 사진을 달랑 들고 영국으로 건너간 정 회장은 A&P 애플도어사 회장을 만나 당시 500원짜리 지폐에 있는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며 설득을 했다.

애플도어사의 롱바통 회장은 정 회장의 확신에 찬 설득에 감복하여 버클레이즈 은행을 소개해주었고, 버클레이즈 은행은 해외차관을 보증해주는 영국수출신용보증국 총재를 소개해주었다. 총재는 정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배를 구입할 사람이 확보되었다는 확실한 증명을 요구했다. 배를 건조하겠다며 공장도 짓지 않은 사람에게 막대한 차관을 제공하는 것은 그에게도 모험이었던 것이다.

정 회장은 다시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갯벌에 소나무 몇 그루와 초가집 몇 채가 초라한 백사장 사진과 5만분의 1 짜리 지도 한 장, 그리고 다른 조선회사에서 빌린 26만t짜리 유조선 도면을 들고 선주들을 찾아다녔다.

“당신이 이런 배를 사준다고만 하면 내가 영국에서 돈을 빌려 이 백사장에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어주겠다.” 그런데, 미친 사람처럼 제안하는 이 말을 듣고 배를 사겠다고 덤벼든 더 미친 사람이 있었다. 그리스의 리바노스였다.

1976년, 오일 쇼크의 와중에 20세기 최대의 대역사로 불리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현대가 따냈다. 공사 금액이 우리나라 예산의 반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공기를 6개월 단축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철 구조물과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바지선으로 사우디 현장까지 수송하기로 했다. 주변의 반대가 수도 없었지만, 보험도 가입 안하고 19차 항해를 너끈히 소화했다. 세계가 놀란 또 하나의 신화였다.

유조선 공법은 또 어떤가. 1984년, 서산 A지구 총연장 6400m 방조제 공사에 마지막 270m 물막이가 난제였다. 초속 8m의 급류에 서 있는 물새 다리가 꺾이고 자동차만한 바위도 들어가자마자 떠내려갔다. 그때 정 회장의 머리에 고철 유조선이 떠올랐다. 바로 폭 45m, 높이 27m, 길이 322m의 23만t급 유조선을 끌어와 보를 막았다. 나중에 정주영 공법으로 불린 이 일은 뉴스위크와 타임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신용, 창의력, 순발력, 용기와 도전으로 점철된 정 회장의 생애는 허생전의 허생과 비슷하다. 허생도 가난을 뚫고 신용 하나로 만금을 빌려 일을 시작했다. 남과는 다른 아이디어로 100배의 이윤을 올렸고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었다. 나중에는 빈민들을 구제해 새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었다. 그 대목은 14대 대선에 출마한 정 회장의 마지막 이력과도 흡사하다.

TV 광고에 나오는 정 회장의 생전 모습을 보며 연암 박지원과 그의 허생전,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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