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사랑의 등대'를 본 적 있다. 등대 몸통에는 맹세와 흔적들이 빼곡했다. 연인들과 신혼부부들은 울산 대왕암, 강원 강촌역, 제주 용연구름다리, 경북 봉화의 오지 간이역인 승부역까지 찾아들어 자물쇠를 꼭꼭 채운다. 만인산 자연휴양림에만 가도 푸른 맹세를 담은 자물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단연 그보다 센 징표가 문신이다. 은밀한 부위에 남편 이름을 새긴 에바 롱고리아, 메간 폭스와 제시카 비엘의 배꼽 밑 문신은 뉴스의 찬거리가 된다. 차두리가 처자식 생일을 로마숫자로 새겼다면 브래드 피트는 캄보디아어로 안젤리나 졸리의 생일을 새겼다. 졸리는 전 남편 'Billy bob(빌리 밥)'을 새겼다 애먹고는 남자 이름은 안 키운다는 후문이다.
대만의 '금잔디' 서희원도 구준엽의 '구'를 '九'로 알고 문신했지만 헤어졌다. '가위손'의 조니뎁도 'WINONA FOREVER'(위노나 포에버)를 새기고 위노나 라이더와 영원하지 못했다. NA 부분만 지워 WI NO FOREVER(WHY NOT FOREVER), “왜 영원히는 안 돼?”로 남았다. 자물쇠 속성이 그렇듯 사랑의 자물쇠는 과신할 게 못 된다. 만남과 헤어짐이 잦은 인간사에서 속 쓰린 연애사의 애흔(愛痕)이기 쉽다.
그 생생한 증거가 모스크바 시청 용역반이 뜯어낸 루쥐코프 다리의 자물쇠 난간이다. 센 강 예술의 다리(Pont des Arts)의 자물쇠 난간도 파리지앵의 애도 속에 한 달여 전 기습 철거됐다. '나와유(I&YOU)' 캠페인으로 '사랑탑'을 조성한다는 대전시, 비슷한 테마존을 구상하는 지자체들이 참고할 점이다. 중국 장자제(장가계) 천하제일교, 괌 투몬 비치 사랑의 절벽, 일본 미타타고코 호수공원 등의 자물쇠가 천하 명물이어도 세월이 흘러 철거의 중심에 안 선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팍팍한 세상, 자신만의 사랑의 성지 하나쯤 있어 나쁘지 않다.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칸트, 『실천이성 비판』)만 뜯어먹고 사는 건 아니니 말이다. 사랑의 자물쇠, 문신은 그러나 믿음을 잃을 땐 욕망의 애처로운 증거물일 뿐이다. 가장 소중한 징표일랑 가슴에 새기고, 닫힌 마음속 자물쇠부터 열어야 한다. 아참, 사랑의 자물쇠는 열쇠를 던져버렸지.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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