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규 서면중 교사 |
나의 꿈은 한 방에 날아갔다. 함께 부임하는 교장선생님께서 인사도 하기 전에 3학년 교실에 들어가 일장 연설을 하고 계신다. 아이들은 그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인데 교장선생님의 목소리는 갈수록 힘이 들어간다. 교장실에 올라가다 아이들의 모습이 궁금해 3학년 교실쪽으로 갔다가 그만 그 장면을 목격했다. 심상치 않았다. 교장 선생님의 부임 인사는 더더욱 강한 어조로 시작했다. 2학년과는 대조적으로 3학년은 잠시도 서 있지 못했다.
인사를 마치고 강당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가관이었다. 파마에 염색한 아이, 엉덩이에 바지를 걸치고 어깨를 좌우로 흔들며 슬리퍼를 질질 끄는 아이, 교복을 초미니스커트로 줄여 입고는 목청 터져라 소리 지르는 아이…. 그 아이들 앞에 섰다. 담임에게 관심을 두는 아이는 몇 안됐다.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르든 말든, 그야말로 신나게들 떠들어댄다. “앞으로 나는 너희들을 사랑할 거다. 사랑할 준비가 돼있어!”라고 같이 소리를 지른다.
꽤나 유명한 아이들인가 보다. 초면인 학부모들조차 담임에게 걱정하며 인사를 건넨다. 수업을 못할 만큼 부산하고 소란스럽다. 대여섯 명이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어 간다. 너무나 익숙해 있어 모든 아이들이 함께 그저 웃고 떠들며 깔깔거린다. 대가 센 놈들이다. 한 시간 수업을 하고 나면 기가 다 빠져 나가는 것 같다. 아침 자습 지도를 하고 나면 벌써 녹초가 된다. 순회 교사 시간에는 더욱 심하다. 그래도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고 아이들 앞에서 힘주어 말한다. 저절로 기도가 된다.
이런 아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교장 선생님이 선봉에 선다. 삼월 초부터 매주 금요일은 가정 방문의 날로 정해 어려운 학생부터 서너 명씩 방문했다. 학부모나 학생 모두 반기는 분위기였다. 하루는 아침 일찍 교실에 갔더니 아이들이 둘러서서 맛있게 김밥을 먹고 있었다. 먹기 싫어 피하자 한 아이가 따라와 끝내 김밥을 입에 넣어준다. 수업 시간에는 목청도 큰데다 엉뚱한 소리로 억지를 잘 부리는 다현이가 “선생님, 저하고 선생님하고 궁합을 봤는데 87점이나 나왔어요”하고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아이들끼리 이름의 획수를 가지고 하는 놀이다. 어제는 나라가 교무실에 오더니 빈 과자 봉지를 주고 급히 간다. 괘씸해 따라갔더니 사탕 봉지를 가리키며, “선생님은 행복남이에요”하고는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과자 봉지의 유통기한 밑에 생산자인 듯한 '이진규'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유치원부터 지금까지 십여 년을 같이 살아온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이 거추장스러워 저항할 수밖에.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나를 제 친구 대하듯 한다. 참, 가소롭다.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싸우고 울고, 소란을 피우는 저 역동적인 아이들을 넉 달이 흐른 지금도 감당하기 버겁다. 큰 가슴으로 아이들을 품고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이었으면 좋겠다. '좀 센 놈들을 만나다'는 반목과 갈등을 거듭하다, 마무리는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캐릭터가 함께 성장하는 반전 드라마였으면 좋겠다. 진정 아이들과 우여곡절을 겪지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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