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슈렉은 천둥벌거숭이처럼 살았던 과거가 그립다. 마법사 럼펠의 계략에 속아 ‘새로운 하루를 받는 대신 과거의 하루를 포기하는’ 각서를 쓰는데. 럼펠은 슈렉이 태어난 날을 빼앗고 슈렉의 모든 과거가 사라진다. 럼펠의 마법을 푸는 분투가 시작된다.
“우리 이제 뭘 하지?” 3편의 막장, 침대에 나란히 누운 피오나에게 던지던 슈렉의 대사는 시리즈가 끝날 때가 가까왔음을 알리는 회한으로 들렸다.
10년 전, 전통의 월트 디즈니 식 착한 동화를 단숨에 뒤집어버린 슈렉의 등장은 신선했고 통쾌했다. 왕자가 아니라 괴물에게 구출된 공주는 미녀가 아닌 내숭 없는 추녀였고, 동화 속 내로라하는 공주들은 공주병에 걸린 얌체였으며,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은 매번 위기에 봉착했다. 슈렉이 동화책을 부~욱 찢어 화장지로 쓸 때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격려했다.
하지만 그것도 3편에 이르러 한계를 드러냈다. 더 이상 할 말이 남아있을까 싶었는데, 4편이라니. 슈렉, 그 네 번째 이야기 ‘슈렉 포에버’는 퇴물 스타가 보내는 고별인사다.
생각해보니 아직 하지 않은 게 있긴 하다. 인기 시리즈물이 한계에 봉착하면 곧잘 써먹는 거, 과거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는 거다. ‘슈퍼맨’이 그랬고, ‘배트맨’이 그랬다. 하지만 남들이 하는 방식 그대로 따라하면 ‘슈렉’이 아니다. 슈렉은 겁나 먼 왕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똑같이 벌어지는 평행우주에 떨어진다. 이곳에서 피오나는 왕권에 맞서는 여전사이고, 동키는 짐 나르는 당나귀이며 장화 신은 고양이는 비만한 집 고양이다. 그들은 슈렉을 전혀 알지 못한다. 영화는 모든 ‘관계’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 슈렉의 모험담이자 반성문이다.
‘슈렉 포에버’가 패러디하는 건 동화가 아니라 그간 자신들이 쌓아올린 캐릭터 자체다. 되새김질 하면서 “날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거다. 아쉬운 건 새로 쓴 이야기가 별로 참신하지 않다는 점. 너무 일상적인 거라서 잊고 산 소중한 것들, 잃어버리고 나서야 가족과 친구, 연인의 소중함을 깨닫는 줄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슈렉’이 그렇게도 비틀고 뒤집었던 디즈니 식 결말 아닌가. ‘드래곤 길들이기’도 그렇고, 드림웍스가 디즈니와 차별화된, 배포 크고 성인 취향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는 건 아닌지, ‘슈렉’의 파이널은 그래서 더 아쉽게 느껴진다.
어쨌든 호박 폭탄을 든 마녀들의 빗자루 추격신과 더불어 지난 10년간 팝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던 수다스런 캐릭터들을 3D로 만나는 건 즐겁다. 슈렉, 피오나, 동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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