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커플 클라이브와 엘사는 난치병 치료를 위해 다양한 동물의 유전자를 합성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회사는 더 이상 연구를 원치 않지만 클라이브와 엘사는 비밀리에 인간의 DNA를 합성하고 배양한다. 마침내 새로운 생명체 드렌을 탄생시킨다.
빈센조 나탈리와 기예르모 델 토로가 만났다. 빈센조 나탈리는 데뷔작 ‘큐브’로 일약 천재 반열에 오른 감독. 누구에 의해, 무슨 목적으로 사각의 방에 갇히게 됐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탈출기를 통해 폐쇄공포의 새 경지를 열어젖혔다. 소재로 선택한 과학적 지식에 사실적으로 접근하는 그의 각본과 연출은 관객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란 공감으로 공포를 증폭시킨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에서 보듯 기괴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감독. 둘이 감독과 제작자로 만났으니, ‘스플라이스’가 어떤 영화일지 감이 잡힌다. 기괴하고도 아름다울 것, 생명공학이 당면한 이슈와 윤리적 문제가 공포의 바탕을 이룰 것, 그리고 스멀스멀 공포가 심장을 죄어올 것.
1일 개봉한 ‘스플라이스’의 ‘기괴한 아름다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인간의 귀 모양 연골 조직이 등에 돋아난 털 없는 쥐의 사진을 보고 떠올렸다는 ‘유전공학적 프랑켄슈타인’은 강렬했다. 네 갈래 꽃잎 모양의 동공, 캥거루를 닮을 다리, 전갈의 꼬리, 새의 민첩함을 결합한 피조물은 이상미(美)와 그로테스크, 천사와 악마의 경계를 넘나든다. 게다가 인간다운 감성과 지성도 갖췄다. ‘스플라이스’는 두 가닥 끈의 올을 풀어 꼬아 잇대는 뜻이며, 서로 다른 DNA의 결합을 의미한다.
이 아름다운 인공피조물을 인간이 그냥 둘 리 없다. 신의 영역을 넘본 인간들은 통속성을 드러내며 파멸의 길을 걷는다. 인공피조물에 드렌이란 이름을 붙이고, 실험체에서 애완동물과 같은 존재로 대하더니 한발 더 나아가 ‘딸’처럼 살갑게 여기다가, 끝내는 성적 대상으로 삼는다. 드렌은 급기야 위협적 괴물로 변모한다.
공포영화치고는 공포의 수위가 낮다. 새 생명체의 공격성보다는 피조물과 인간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부모 중 한쪽을 향한 성욕, 엑스트라-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다른 한 쪽의 살해욕구가 공포를 빚는 정도다. 또 하나, 하이브리드 존재와의 섹스라는 이종교배의 금기(禁忌)가 불안을 일으킨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생명체보다 그걸 인간이 컨트롤할 수 있느냐 하는 이야기는 심심하지만 비주얼만큼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충격과 공포를 넘어 경이감의 영역까지 건드린, 영화사에 기록될만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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