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2000년대 초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의 장래희망을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1순위로 조폭이 나왔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약한 사람 등쳐먹는 전형적 집단인 조직폭력배가 TV 드라마를 통해 근사하게 포장된 탓이었다.
아이들의 생각은 자고 일어나면 달라질 정도로 즉흥적이고 가벼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그때 느끼고 판단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아이들의 시선은 사회와 학교, 그리고 부모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꿈을 품게 하는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세상이 얄팍해지고 강팍해진 건 사실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정신적으로 빈곤해진다는게 역설적일 뿐. 로버트 라이시 교수의 부유한 노예』는 100년 전보다 수십 배나 더 부유해진 오늘날 선진국의 중산층이 일에 얽매여 귀중한 삶을 얼마나 희생 당하는지 섬뜩하게 보여준다. 실제 우리는 남들이 선망하는 경제적 부를 얻었음에도 삶의 여유를 누리기보다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에만 몰두해야 하는 주변 현실에 낯설어 하지 않는다. 이 와중에 어른은 자신이 추구한 가치를 잃어버리고 아이들은 세속과 타협하거나 그 속에서 꿈을 찾아 헤맨다.
라이시 교수는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에서 초대 노동부장관을 지냈다.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에 몰두하다 어느 날 돌연 사임을 결정했다. 당시 사임의 변은 이랬다. “나는 내 삶을 찾고 싶다. 내 가정으로 돌아가서 두 아들과 사랑하는 부인하고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장관을 그만두려고 한다.”
2000년 8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되자 직원들은 “힘센 장관이 오는구나” 했다. 8개월 뒤 퇴임 소식이 전해지자 “어, 우리 장관이 바뀌네”로 장관을 부르는 접두어가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 해양수산부의 한 서기관은 그 이유를 '꿈'이라는 단어에서 찾았다. “그는 한 건 올리겠다는 자기과시적인 꿈을 꾸지 않았다. 대신 조직과 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고자 했고 그래서 꿈을 심는 일에 정성을 쏟았다. 단기간에 성과를 보기도 어렵고 빛도 나지 않는 일이지만 해양수산부의 미래를 생각하며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고자 했던 그를 어찌 왔다가는 손님처럼 여길 수가 있었겠는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시장과 도지사, 교육감들의 임기가 곧 시작된다. 이들에게 바라는 바 딱 하나다. 시·도민, 특히 우리 아이들이 꿈을 품게 해달라는 것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리더는 무난하다. 그러나 바다에 대한 꿈을 키워 바다를 미치도록 그리워하게 만드는 리더라면 더욱 좋다. 그러면 누군가는 물고기를 잡으며 살고, 또 누군가는 박태환처럼 수영을 해서 바다에 나가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큰 배를 만들어 바다를 항해할 것이다.
지난 주 한 TV 드라마에서 꼬마 아이는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착한 사람이 이기는 세상 맞나예?” 순간 난 움찔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잊고 있었던, 어쩌면 잊어버리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네가 그렇게 믿으면 그런 세상이 될 거다.” 칭기즈칸도 “한 사람의 꿈은 꿈일지 모르나 만인의 꿈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인 사람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꿈을 꾸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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