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희 대전둔천초등학교장 |
맨 처음 우리 집에 온 강아지는, 항상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가'라는 이름의 말티즈였다. 둘째는 거리에서 어떤 할머니가 사정을 해서 사온 시추인데, 어찌나 점잖던지 이름도 '점돌이'다. 셋째는 천변에서 주워 온 요크셔테리어다. 해질 무렵,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이 가여워서 데려와 보니까 온몸이 피부병이었다.
분홍색 옷을 입고 와서 '분홍이'가 된 셋째에게 아가와 점돌이의 외면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인지 셋째는 봄이에게 다정한 언니가 되어주고 있다. 봄이가 놀자면 같이 놀아주고, 봄이의 비명이 들리면 쪼르르 달려가는 것도 분홍이다. 짝수의 평화가 새삼스러운 풍경이다. 천진난만한 그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가끔 학교에 있는 우리 아이들을 떠올린다. 강아지와 아이들은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내게 스스럼없이 말을 건다. “교장선생님은 참 예뻐요. S라인 이에요. 그런데 교장선생님은 몇 살이세요? 어떻게 하면 교장선생님이 되나요? 공부 잘 하면 되나요? 우리 언니가 결석했어요. '신종플루'인지도 모른대요.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했어요. 그래서 삼촌이랑 할머니랑 살아요.” 나는 그들이 이끄는 대로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그러니까 집에서는 강아지가,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내가 나이를 거꾸로 먹도록 도와주는 웰빙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예쁜 아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도 우리 학교는 두 학급이나 줄었다. 시골에는 소규모학교가 통폐합되고 있고, 아기의 울음소리도 끊어진지 오래라고 한다. 이대로라면 사실상 '민족 소멸'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극단적인 소리도 들린다. 청춘의 에너지는 자유와 출산이라는 양가적 감정에서 흔들린다. 아기를 갖지 않는 이유가 '교육비' 때문이라는 항변도 있다. 그래서 아기 대신 강아지를 기른단다. “아기 대신 강아지라… 그럼 학교에도 아이 대신 강아지가 와야 하는 걸까? 그럼 우리 봄이도 학교에 와서 버릇 좀 고쳐볼까?”
동화의 소재로나 가능한 상상에 실소를 머금고, 당면과제와 해답을 찾아본다. 우리는 하루 빨리 아이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워킹 맘들에게는 육아에 안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교육비는 우리나라 특유의 쏠림현상에서 개성의 다양성과 선택이 존중될 때 문제해결이 가능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간절한 것은, 순진한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도록 국민 모두 감시카메라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은 월드컵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 지킴이' 운동에도 언제, 어디서, 누구나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도리스 레싱'은 '이웃의 불행에 가장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최고의 인간이라고 했다. '사슴은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심장이 터져 죽는다.'어느 영화의 마지막 대사도 오버랩 되어 온다. 오늘도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문고리를 다잡고 귀를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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