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엔 구슬이나 딱지부터 시작해서 우표, 동전, 그림, 인형등 수집하는 대상도 다양하기 그지없다. 나 또한 우리나라 도자기 그릇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월급날 하나둘 사기 시작했지만 내가 모을 수 있는 것이라곤 생활용품 몇 가지일 뿐이었다.
▲ 간송 전형필.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이 책은 24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거부 40명'에 들 정도의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간송이 우리문화재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부터 하나하나 작품을 수집하게 된 경위들이 아주 흥미롭게 전개되어 있었다.
책의 첫 내용은 광복 후 국보 제68호로 지정된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을 당시 돈 2만원(서울시내 기와집 20채값-현재 돈 가치로 무려 60억원)을 주저 없이 지불하여 일본인 수장가 보다도 먼저 구입하게 된 경위가 너무나도 긴장감있게 전개된다. 조금만 늦었어도 일본으로 반출될 뻔 하였던 아슬아슬함에서 안도감으로 바뀌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간송이 우리 문화재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유물 수집에 매진할 수 있게한 데에는 많은 사람과의 만남과 인연이 있었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간송이 아무리 우리문화재에 대한 애착이 있다한들 전문적인 지식없이 어찌 이리도 훌륭한 문화재를 구입할 수 있단 말인가!
간송은 당대 최고 서예가이자 고서화 감식가이며 문화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스승 위창 오세창과의 만남을 통해 지도를 받으며 문화재를 수집한다. 이 운명적인 만남으로 결국은 수 많은 문화유산이 우리땅에 남게된 결과가 되었다.
신윤복의 '미인도', 매국노 송병준의 집 아궁이에서 구해온 정선의 '해악전신첩', 현해탄을 건너가 찾아온 신윤복의 풍속도 '혜원전신첩'을 2만 5000원에 되사온 수집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다.
국보 제294호로 지정된 '청화백자 양각진사철재 난국초충문병'이 경기도 팔당 근처에 살던 할머니가 야산에서 주워 참기름을 넣어 1원에 판 참기름병을 경매에서 간송이 1만 5000원에 낙찰받은 이야기에서는 비슷한 청자가 어느 시골마을 찬장에 참기름병으로 놓여져 있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고려청자 명품만을 수집해온 영국귀족 출신인 존 개스비(John Gadsby)와의 줄다리기 협상을 통해 청자20점을 40만원에 구입하게된 이야기. 40만원이면 그당시 기와집 400채의 값이라는 당시 최고액의 거래로 지금으로 계산하면 한작품에 60억원의 돈을 지불한 것과 같다고 한다. 이때 구입한 명품청자 20점중 7점이 광복후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만약 간송이 아니었다면 지금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관람하게 될 뻔하지 않았나 싶다.
어려서부터 간송을 아끼던 한남서점 주인 백두용으로부터 '실록에 언급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으라'는 부탁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1만원에 구입하여 자신이 수장하고 있는 수집품중 최고의 보물로 여겨 한국전쟁 당시 피란을 갈 때에도 품에 넣어갔다는 이야기도 스릴감이 넘치는 부분이 아닐수 없다.
금싸라기땅을 팔아 '사기그릇'을 사는 바보로 손가락질 받기도 했다던 조선 제일의 수장가!
돈과 안목이 있다고 쉽게 갈수 있는 길이 아니라 명확한 책임의식과 과감한 결단력이 함께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외롭고 어려운 길. 일제가 흔적까지 지우려고 했던 조선의 혼을 간송 전형필은 우리 문화재를 지켜내는 것으로 승화시켰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젊음과 재산을 모두 바쳐 모아온 골동품 및 많은 우리문화재들을 보존하기 위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박물관인 '보화각'은 현재 '간송미술관'으로 봄(5월)과 가을(10월) 1년에 두차례만 일반에게 개방하여 작품을 전시한다고 하니 올 가을엔 꼭 방문하여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이땅에서 지켜낸 간송 선생님에 감사함을 온몸으로 느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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