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과 교수 |
합동조사단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의 경계 시스템을 뚫고 북한 잠수정이 침투해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아무도 모르게 도주했다는 것이다. 평시 상황도 아니고 당시 서해에서는 '2010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실시 중이었다는 데도 말이다. 바다에는 최신예 이지스함과 여러 척의 전투함이 작전 중이었고, 하늘에는 링스 헬기와 P3C 대잠 초계기가 떠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잠수정의 침투와 어뢰 발사, 그리고 도주를 까맣게 몰랐다면 사태의 심각성은 매우 커진다.
감사원도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감사를 통해 “전투예방, 준비태세 및 상황보고, 위기대응 조치, 군사기밀 관리 등에 있어서 국방부와 군의 대응에 다수의 문제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책임을 물어 합참의장 등 군 지휘부 25명에게 징계 등 적정한 조치를 취하도록 국방부에 통보했다.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국민의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사건 초기부터 이 대통령이 지하 벙커에서 관련 회의를 4차례나 주재하면서 사건을 직접 챙겼다. 초기 대응이 잘 됐다고도 했다. 이번 사건은 현 정권의 안보무능을 총체적으로 드러낸 사태로서 군 지휘부는 물론이고 국방장관, 그리고 대통령까지 책임져야 한다.
합동조사단 발표시 제복 차림의 장군들이 너무도 태연하게 사건 개요를 설명하는 것을 보고 많은 국민들은 커다란 분노와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최소한의 반성과 사과도 없이 모든 것을 북한 탓으로 돌리는 그들의 후안무치한 모습에서 명예와 책임을 소중히 여기는 군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죽하면 도올은 “자기 부하들을 다 죽여 놓은 패잔병들이 개선장군처럼 앉아서 당당하게 발표하는 그 자세에 너무 구역질이 났다”고 일갈했을까.
이러한 무책임은 담화문을 발표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도 확인된다. 모든 책임을 북한에게 돌리면서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남북화해와 교류의 성과를 하루 아침에 허물어 버리는 강경조치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국가안보가 구멍 뚫리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군 통수권자의 사과와 반성은 보이지 않았다. 평화와 공존을 향한 남북관계의 비전은 찾아 볼 수 없고, 천안함과 함께 침몰하고 있는 초라한 남북관계를 목격할 뿐이었다.
크든 작든 모든 자리에는 그에 걸맞는 책임이 있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개인의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군인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대통령은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즉각 국방장관과 군 지휘부에 대해 문책 인사를 단행했어야 했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 없는 중립적인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했어야 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사고 원인을 조사했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 결과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책임이 실종된 곳에 신뢰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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