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만 함께하는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문제는 국민의 뜻, 즉 민심을 어떻게 헤아릴 것인가? 정관 2년 태종이 위징에게 현명한 군주와 어리석은 군주를 구별하는 기준에 관해 물었을 때, 위징은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널리 듣기 때문이고, 어리석은 군주는 편협하게 어느 한 부분만을 믿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하고 있다. 위정자(爲政者)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은 의견을 듣고 합리적인 건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정자 주변, 특히 참모들은 직언을 할 수 있어야 하며, 참모들이 직언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 위정자 스스로 직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관 8년 태종은 신하들에게, “신하가 간언을 하려면 군주가 진노할 것을 두려워 할 것이므로, 간언이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질책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의견을 말하는 신하는 내심 두려워할 것이고 그렇다면 어느 신하가 다시 간언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국민의 뜻이 위정자의 생각과 다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관 7년 한 신하가 태종에게, “군주는 높은 곳에 있으면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구제해야 합니다. 군주의 욕망이 백성들에게 복종하도록 해야지 백성들이 군주의 욕망에 복종하도록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라고 간언하고 있다. 지금부터 약 1400년 전 그것도 절대군주 시대의 이야기다. 오늘날 국민이 뽑은 대한민국 위정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정관정요에 보면 태종에게 가장 많은 간언을 하는 신하가 위징이다. 위징은 태종 이세민이 즉위하기 전, 친형인 태자 이건성과 생사를 건 제위(帝位) 다툼을 벌일 때, 태자 측에 가담했던 핵심 참모다. 위징은 태종을 즉시 제거해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신하였다. 태종이 제위 다툼에서 승리하고 위징을 불러 들였을 때 위징 본인은 물론 대다수 신하들이 위징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종은 능력이 뛰어나고 강직한 위징을 중용했고, 위징 또한 자기를 알아주는 군주를 만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전심전력으로 태종을 보필하게 된다.
훗날 태종은 “위징은 과거 분명 나의 적이었고, 그 죄는 제환공(齊桓公)에게 활을 쏜 관중보다도 크지만 전심전력을 다해 섬기는 사람을 섬겼을 뿐이니 이 또한 칭찬받을 만하다. 나는 그를 발탁해 중용했고 위징은 나를 거스르면서까지 진실 되게 간언했고 내가 그릇된 일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를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춘추 오패(春秋 五覇) 시대를 연 제환공이나 후세 사가(史家)들이 그의 치세를 '정관지치(貞觀之治)'라고 칭송하는 당태종이나 자신을 죽이려고 한 적의 신하까지 중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태평성대를 이루게 한 리더십의 근간이라고 생각한다.
공사가 중단된 세종시 그리고 2007년 여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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