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인석 대전문인협회장·수필가 |
그때 소동파는 한숨을 뱉으며 허전한 발걸음 멈추고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물은 무상하게 흐르는 것. 어느 경우도 역행함이 없는 법, 세월도 흐르고, 인생도 흐르고, 모든 존재는 그렇게 흐르는 것…. 옳다. 소동파는 계곡 물소리에서 '무정설법'을 깨닫는다. 저 물소리가 바로 자연의 이치요, 삶의 순리이며, 진리를 가르치는 부처님의 설법이구나.
요즘 툭하면 '전쟁불사' 소식을 듣게 된다. 사회혼란을 충동질하는 불순세력들의 주술적 구호가 된 '결사투쟁' '결사반대' 등 섬뜩한 구호가 이제는 면역이 될 만도 하지만, 그러나 왠지 '전쟁불사' 소식은 그냥 귓등으로 흘려버릴 수 없는 심각함이 스친다. 최근 불거진 천안함 사건이후 남·북간 정국분위기가 바로 그렇다.
서해에서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격침되고 장병 46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과학적, 객관적, 조사와 물증까지 제시되면서 북한만행사실이 세계적 여론이 되자, 북한 측은 호전적 본성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했다. 발악적 상투적으로 '전쟁불사'를 외치며 덤벼들고 있다.
좌파정권 10년 동안 '햇빛정책'이란 미명으로 우리가 북한에 퍼다 준 물자만도 천문학적이다. 민주국민의 혈세가 굶주림으로 멸망직전인 공산독재 북한을 회생시켜 준 셈이다. 그 결과가 바로 배은망덕으로 다가선 오늘의 '전쟁불사'협박이다. 그들의 목표인 적화통일이 야욕돼 '핵무기 위협'과 '천안함 격침'이란 대가가 부메랑 되어 돌아온 것이다.
올해로 6·25전쟁 발발 60년이다. 젊은 세대들에겐 국가관도, 안보의식도 식어지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19세 이상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 6·25전쟁 발발연도조차 모른다고 응답한 사람이 36.9%나 됐다. 더구나 청소년 학생들은 6·25전쟁을 일으킨 국가가 일본(13.5%), 미국(13.4%) 등으로 알고 있으며, 심지어는 남한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대답한 것도 2%나 됐다니, 역사교육은 어디로 가고, 국가정책은 어디로 갔나.
더욱 기막힌 일은 지방자치선거 이후, 일부 정치집단의 행태가 기고만장이다. 자기네가 잘해서 승리한 것처럼 민심을 착각하고 있다. 정부에 “대북정책을 완화하라”고 공공연하게 요구했다는 것이다. 특히 야당은 천안함을 격침시킨 북한 측 만행에 대해선 벙어리다. 어찌 보면 '전쟁불사'를 떠들어대는 북한 측 행동을 두둔하는 눈치다. 그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정을 다스리는 정치집단들인지 묻고 싶다. 왜들 이러는지 걱정이다.
“-전략- 시대를 슬퍼하며 꽃조차 눈물 흘리네(感時花
淚). / 한스런 이별에 새들도 놀래는구나(恨別鳥驚心).” 이것은 전쟁의 슬픔을 한탄한 두보(杜甫)의 시 한 구절이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모두 슬프다. 우리는 이미 동족끼리 죽고 죽이며 전쟁을 체험한 비참한 국민이다. '전쟁불사(戰爭不辭)'라니…. 누구를 위함인가. 소동파의 시는 무엇을 뜻하고, 두보의 시는 무엇을 뜻하나. 한없는 무정설법의 진리를 어떻게 이해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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