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공직자의 명예훼손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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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선]공직자의 명예훼손 소송

[금요논단]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0-06-10 14:47
  • 신문게재 2010-06-11 20면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전화 한통을 걸어서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허위의 풍문을 기사화하는 경우가 더러 있나 보다. 그러한 게으른 방식의 취재·보도 행위까지 법의 보호를 받는 것 같지는 않다. 고위 공직자가 기관장들과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해당 지역의 특산주인 복분자를 한잔 나눴다.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서울에 소재한 아주 자그마한 인터넷 언론사가 바람결에 실려온 소문을 듣고 복분자 한잔을 '양주파티'로 둔갑시켰다. 보도가 나간 직후에 인터넷 언론사는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같은 날 바로 이전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의 정정보도를 내보냈다. 성이 차지 않은 고위 공직자는 명예를 훼손당했다면서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08년 11월 대법원은 5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언론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러한 허위 보도를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선출직 공직자는 물론 임명직 고위 공직자들의 명예훼손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언론의 보도가 직접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언론과 인터뷰를 해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당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꼬투리 잡는다. 전임 농식품부장관이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제작진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해 달라고 요구한 사건은 항소심에 계류 중이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해군 참모총장은 오폭설을 보도한 통신사 기자들을, 국방부장관은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을 지낸 박선원 연구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해군은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민주당추천 신상철 위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합동참모본부의 대령 7명은 국회천안함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인 민노당의 이정희의원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청와대 홍보수석은 서울의 봉은사 주지스님을,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른바 '회피연아' 동영상을 유포한 누리꾼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국정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면서 박원순 변호사를 상대로 2억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 허위보도로 피해를 입었다면서 한명숙 전 총리는 서울의 큰 신문사 두 곳에 대해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쪼인트' 발언에 발끈한 한 공영방송사 사장은 “명예훼손 소송을 하겠다”고 큰 목소리를 냈으나 아직 소송의 작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방송사의 기자들이 사장을 대신해 소송을 해주겠다고 이악스럽게 벼른다.

다른 나라들도 명예훼손을 형사벌로 다루는 법체계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거의 사문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론보도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후진국형 문화로 폄하돼 왔다. 민주주의 후진국가들은 공직자에 대한 언론의 정당한 비판을 봉쇄하고 얼르고 겁주는데 명예훼손관련법을 동원한다. 물론 우리 법원은 공직자의 업무에 대한 보도 내용이 진실하면 해당 기사가 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더라도 그 책임을 묻지 않는다.

언론이 최선을 다해 취재·보도했으나 결과적으로 허위의 사실이라는 점이 밝혀질 경우에도 언론은 대체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 업무처리가 정당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는 국민들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면서 언론의 감시와 비판적인 보도가 악의적이거나 현저하게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니라면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공적활동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보호하는 이러한 이익 조정 법리는 지난 10여년간의 언론소송을 통해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직자들의 명예훼손 소송은 언죽번죽 질펀하다.

올해 초 선고된 서울남부지법의 판결에 나타나듯, 공복으로 불리는 공무원은 말 그대로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종이고 머슴이며 노비다. 법원은 공무원의 명예란 일한 결과에 대해 국민이 인정해주고 칭찬해줄 때 비로소 외부로부터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애당초 본인이 나서서 보호하고 지켜야 할 명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언론매체의 왜곡된 보도에 대한 대응은 정정보도나 반론보도청구와 같은 제도를 이용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공복의식에 투철한 공직자의 도리라고 법원은 판시하고 있다. 고위직 공직자일수록 마땅히 그래야 한다. 말에게 재갈을 물리 듯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데 명예훼손 법을 동원하려는 발상보다는 입고픈 언론의 바른 말을 보호하려는 자세가 음전한 공무원의 본보기 명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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