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찬 목원대 교수 |
세계인의 월드컵 광기 중에서 특히 한국인들의 월드컵에 대한 사랑은 독특하다. 세계축구 역사에서 800만 명의 인구가 '붉은 셔츠'를 입고 거리에서 '아 대한 민국'을 외쳤던 사례는 없다. '붉은 악마'와 같이 국가대표팀을 위해 헌신성과 신화적 혼기를 가진 서포터스 그룹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의 월드컵에 대한 광기는 그 규모에 있지 않고 특성에 있다. 유럽과 남미의 축구 팬들이 프로 경기에 열광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축구팬은 국내 프로 경기에는 결장하고 국가 대결(對決)에 흥분한다.
유럽의 축구 광기는 탈물질(脫物質) 사회에 풍미하는 스포츠를 통한 엔조이(enjoy)의 한 유형이라면, 한국의 축구팬은 국가적 감성을 가지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그리고 한국의 '붉은 악마'는 유럽과 남미의 훌리건(hooligan)들과 그 특성을 달리한다. 훌리건들이 무질서와 축구장 깽판의 대명사라면, 붉은 악마는 응원혼기와 질서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청소까지 마치고 귀가한다. 훌리건들이 원자화(原子化)하여 개인적 즐거움을 만끽한다면 붉은 악마는 집단적 응집력과 집중력을 과시한다. 훌리건들은 자신들의 응원사업에 대해 자긍심이 약한 것에 비해 붉은 악마는 높은 프라이드(self-pride)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월드컵' 정치사회학은 무엇인가? 한국의 월드컵 열정은 '미순이-효순이 촛불시위'와 '광우병 촛불 시위'에 나타난 집단행동과 일맥상통한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급속한 산업화에 성공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민족주의가 상승한다. 한국처럼 압축 산업화의 성공신화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민족주의적 무드는 가파르게 일어난다. 20세기 초반의 일본과 독일이 그랬다. 그리고 사무엘 헌팅턴의 주장처럼, 근대화(modernization)의 성공은 서구화(westernization)를 동반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문명에 대한 회복(reclaim)으로 나타난다.
1961년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에는 오징어, 갈치, 그리고 돈모(豚毛)가 들어 있었다. 2010년 한국은 따라잡는 경제(catch-up economy)를 완전히 졸업하고 기계류가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8~30%에 육박하는 나라가 되었다. 어찌 민족적 프라이드(national pride)가 하늘을 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광우병 촛불 시위'에서 나타났듯이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누구든지 용서할 수 없다. 그것이 은혜의 나라 미국이라도 그렇다.
월드컵은 한국인에게 전쟁터다. 박지성, 이청용 등은 우리 부족이 자랑하는 전사들이다. 아직까지 한국의 월드컵 민족주의는 건강한 편이다. 저항적 민족주의 요소가 많고 패권적 민족주의 요소는 아직 적은 편이다. 2010년 월드컵이 다시 우리부족의 성공적 동화(saint fairy tale)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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