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요한 목원대 총장 |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1등을 한 당선자들이 진정 1등 일까? 부디 “나쁜 관리는 투표하지 않은 좋은 시민들에 의해 선출 된다”는 조지 진 나단(George Nean Nathan)의 말처럼 '좋은 시민'이 투표하지 않은 결과, 투표한 시민들에 의해서만 뽑힌 '나쁜 1등'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지역발전과 시민의 삶의 질을 결정할 자치단체장을 뽑는데 표라는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이 나단의 말처럼 꼭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기권자 중의 상당수는 예전에 1등에게 기대를 많이 했지만 기대한 바를 이루어주기는 커녕 절망과 근심만 안겨주었기에, 1등을 뽑는데 등을 돌리고 눈길을 거둔 사람들이다.
왜 이렇게 1등에게서 눈길을 거두고 등을 돌리는 일이 발생했을까? 여러 관점에서 다양한 분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는 2등 이하를 기억하지 않는 1등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1등을 하면 모든 것을 가져도 된다는 묘한 마법에 걸려드는 경우를 자주 본다. 지방 행정의 막중한 권한을 지고 있기에 그리고 시민들이 1등에게 그런 권한을 위임했기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가끔 1등은 시민의 뜻을 받드는 것처럼 말하지만 시민의 뜻을 빙자해 자신의 배를 불리는 꼼수를 두기도 한다. 때로는 1등으로 뽑히는데 힘을 보탠 사람에게 1등의 권력을 이용해 한 자리씩 내주고, 한 건씩 해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춘향전을 보며 변사또를 비난하지만, 자신이 현대극의 변사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는 1등도 있다.
모든 1등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런 일도 일어날 것이다. 1등이 추진하는 정책이 어떤 장애물에 부딪히게 되면, 2등 이하의 사람들이 현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투사하거나, 그들의 인식을 바꾸려고 가열찬 홍보전을 전개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월드컵 중계방송에 눈길이 머물게 한다. 또 다른 1등은 자신에게 덤비는 2등을 돕는 사람이 세상에 나서지 못하도록 넘지 못할 장막을 치기도 한다. 또 어떤 1등은 자신이 작은 동네에서 1등을 했다는 처지를 잊고 큰물에서 1등한 사람들과 대립각을 세워 자신이 1등인 땅의 고초를 초래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런 1등이 늘 있어 왔지만, 이번에 뽑힌 1등만큼은 위와 같은 1등이 아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세계를 주름잡다 은퇴한 운동선수들이 은퇴 인터뷰에서 으레 “1등에 오르는 것보다 1등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들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번에 1등한 사람들은 이 말이 사실이고 진리라는 사실을 믿고, 자신을 1등으로 만들어준 2등 이하의 시민들을 무서워 할 줄 알았으면 한다.
그러지 못하면 즉, 2등 이하의 소시민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분명 다음 선거에서는 1등의 자리에서 밀려날 것이다. 이번에 뽑힌 1등들이 '영원한 1등으로 기억되는 진짜 1등'이었으면 하는 것이 2등 이하 소시민의 간절한 소망이라는 점을 대신 전하고 싶다. 그런 소망이 이루어져, 세상을 웃기는 개그프로그램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1등도 기억되는 참 좋은 세상'이라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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