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서양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림을 이해하는 데 두 문명이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현재 서울 국립박물관에서는 세계문명전으로 '그리스의 신과 인간' 특별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살아서 움직일 것 같은 그리스 조각의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 앞에 사람들은 그리스 예술의 힘을 실감한다.
그리스 예술의 힘은 음악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2010년 3월 19일 통영 국제 음악제 개막작으로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공연되었고, 5월에도 서울에서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여전히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천년이 넘는 긴 시간을 뛰어넘어 재해석되는 그리스 신화는 현재까지도 극음악의 가장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이다.
문자 그대로 그리스 신화는 마르지 않는 영원한 음악의 원천인 것이다. 극음악뿐 아니라 그리스 음악 이론과 철학, 미학적 개념 역시 지금까지 서양 음악 이론과 사상의 중요한 기본 토대로 작용한다.
우선 그리스 비극을 한 번 보자. 비극 중 백미로 꼽히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20세기 초 스트라빈스키의 '오이디푸스 왕'으로 재탄생했고, 왕의 딸 안티고네가 겪은 슬픔은 후속편으로 같은 해 프랑스 작곡가 오네게르의 '안티고네'로 이어져 당대 사회에 큰 반향을 남겼다.
그리스 신화를 기초로 만들어진 작품에서도 트로이 멸망 후 돌아오는 길에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 사랑에 빠진 에네아스 이야기는 18세기 초 영국 작곡가 퍼셀의 마지막 오페라 '디도와 에네아스'에서 부활했다.
퍼셀은 마치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유언처럼 디도가 죽기 직전 부르는 마지막 애가 '내가 땅 속에 묻힐 때'라는 불후의 명곡을 남기며 그 노래와 퍼셀 자신을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새겼다.
한편 신화 가운데서도 특별히 음악가의 사랑을 받은 주제가 있으니 바로 오르페오 이야기이다. 오르페오 신화는 절절한 사랑과 죽음, 마법같은 음악의 힘이 등장하는, 소위 말해서 극적 성공의 요소를 모두 갖춘 대표적인 이야기다. 오르페오는 신분도 남다르다. 아버지는 음악의 신이자 태양신인 아폴로이며 어머니는 예술을 담당하는 뮤즈 여신의 막내 칼리오페다.
부모의 음악적 유전자를 물려받은 오르페오는 현악기인 리라를 갖고 다니며 산천초목을 숨죽이게 하고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랬던 오르페오가 사랑하는 여인 에우리디체와 혼인 후 아내가 곧 뱀에 물려 죽자 저승으로 내려가 자신의 연인을 다시 데려오고자 고군분투하는데 그 때 사용한 비장의 무기가 바로 음악이다.
음악은 저승까지 인도하는 뱃사공의 얼음같이 차가운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마법이요, 그 무시무시한 저승의 왕 하데스의 마음조차 돌려놓은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다.
이러한 오르페오 신화는 17세기 바로크 초 이탈리아 작곡가 몬테베르디의 걸작 오페라 '오르페오'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모노디라는 단선율 음악과 앙상블, 합창과 중창이 조화를 이루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는 지금 이 시대에도 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음악사를 따라 오르페오 신화는 18세기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19세기 중반 오펜바흐의 '지옥에 간 오르페', 20세기 초 미요의 '오르페우스의 불행'으로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밖에도 헨델의 음악극 '헤라클레스', 글루크 오페라 '이피게네이아', 모차르트 오페라 '이도메네오' 등 서양음악에는 다양한 그리스 신화 관련 음악이 있다.
그리스 신화는 새롭게 재해석되어 끝없이 영감과 감동을 주는 음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오지희 백석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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