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래]'고딩 4년생'과 미운 오리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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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래]'고딩 4년생'과 미운 오리 새끼

[교육단상]김나래 부여전자고 교사

  • 승인 2010-06-08 14:14
  • 신문게재 2010-06-09 20면
  • 김나래 부여전자고 교사김나래 부여전자고 교사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치마폭 대학생'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글에서는 요즘 각 가정마다 자녀의 수가 한둘에 그치고 자녀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과 보호가 정도를 지나치면서 아이들은 성인인 대학생이 되어서도 부모의 보호를 벗어나지 못하는 '고딩 4년생'이 되고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었다.

▲ 김나래 부여전자고 교사
▲ 김나래 부여전자고 교사
그러나 나는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는 이런 우려와는 정반대의 걱정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작은 시골마을에 위치한 전문계고인 우리학교 학생들은 어려운 형편의 농가자녀이거나, 조손가정에서 자라 관심이나 지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려운 일에 대한 결정을 하거나 고민 등을 함께 의논할 대상을 찾는 것도 어렵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환경에 의해 어린 나이에 삶에 무뎌진 아이들을 보곤 한다.

기억에 남는 아이 중에 학교에서 친구들을 대상으로 일명 '판치기'를 쉬는 시간마다 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도박과도 같은 놀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고, 급기야 학생 대부분이 판치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 아이는 교내 선도 징계 처분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께 끊임없이 야단을 맞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복도에서 벌을 받고 있는 아이를 보니 참으로 딱하기도 하고돈내기 놀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싶기도 해서 대화를 나눠봤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의외로 자신의 속내를 쉽게 터놓았고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까지 잃게 된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대해 수근대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몹시 상처를 받고 또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자신에게서 보는 듯해 겁이 난다고 했다.

나 역시 늘 꾸중을 듣는 그 애를 보면 '얘는 또 왔구나'라는 생각만 했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일단 자신의 상황과 문제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을 갖자고 했다.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운동장을 뛰며 축구를 하거나 일상적 대화를 하면서 선생님들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해보도록 했다. 또한 본인이 문제를 느끼고 변하고 싶어 하는 만큼 상담센터에 상담을 받도록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제는 중소기업에 취직도 하여 선생님만큼 연봉을 받고 직장을 다닌다고 자랑하는 그 아이를 보면 참 뿌듯하다. 또 요즘은 컴퓨터 게임도 잘 하지 않는다면서 자신은 가정을 꾸리면 아이 앞에서 절대 컴퓨터 게임도 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이제 그 아이는 더 이상 매일 혼나고 자신을 비관하던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불만과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은연중에 어른들의 행동 중 보고 들은 것을 습득하게 된다. 그렇다면 아이의 주변 환경에 의해 저절로 체득된 습관적인 잘못을 그 아이의 잘못으로 전부 돌릴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더 노력하고 인내해서 스스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모든 것을 환경의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생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어 '미운 오리 새끼'처럼 바라보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흔히 말하는 문제아들에게 질책보다는 이해와 관용의 시선을 먼저 건넸으면 좋겠다. 아무리 외부에서 거칠고 문제가 많아 보이는 학생이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상처를 가지고 있고 말썽피우는 이유가 있다. 아직 패배감을 안고 살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그만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아이들이 어느 때 우리사회의 백조로 화려하게 부활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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