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태원 표준연 전자기센터 책임연구원 |
직업병에 가까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뒤를 돌아본다.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가 휙휙 멀어져 간다. 차 뒷 유리 아래 초여름 햇볕에 표지색이 바랜 작은 책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먼 길 지루함을 달래리라 마음먹고 책을 집는다. 햇볕을 받지 않은 책 뒷표지는 선명한 주황을 띠고 있다.
무소유. 얼마 전 한 인터넷서점에서 사려던 책이다. 저자가 법정인 이 책은 서른다섯 개의 조각글로 이루어진 총 161면의 소책자다. 2010년 3월 1판 77쇄. 참 많은 사람들이 읽었겠다. 같이 타고오던 동료가 내게 이 책을 읽는 이유를 물어 온다. 난 저자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생을 살았는지 알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과 내용이야말로 바로 그 사람 자신이다. 그러니 사람의 생각을 오롯이 담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잠시 저자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 본다.
저자는 어떤 이로부터 받은 난을 키우면서 난과 인연을 맺고 급기야는 난에 얽매였다고 하였다. 여름날 어디론가 볼일을 보러 갔다가 뙤약볕 아래 두고 온 난을 생각해 내고 부랴부랴 돌아와 축 늘어진 난의 잎들을 보여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 마침내 아름답게 핀 난꽃을 보면서 경이로움에 잠기고, 미미한 난에 정성을 쏟고 있는 자신을 보고 한편으로는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도 들었단다.
어느 날 산사를 찾아온 과묵한 친구에게 그 난을 선물하였다. 그리고는 그의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선물한 것이기도 하지만 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드디어 그는 자유함을 얻는다. 난과 자신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사실 난은 그저 살아 있었을 뿐 저자에게 얽매이지 않았다. 저자가 난에게 얽매였던 것이다. 그 일 이후 저자는 버리는 것이 자유함의 시작임을 깨닫고 버리기를 연습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생각의 단초(端初)를 남기기 위해서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었다. 버튼을 눌러 생각의 조각들을 입력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 차가 잠시 아래위로 흔들렸다. 무소유라 쓰려던 것이 잘못되어 '우소유'라 쓰여졌다.
우소유(又所有)! 저자는 그의 책에서 무소유를 설파하고 있는데 나는 소유를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서 재물과 명예, 권력에 대한 생각에서 훌훌 벗어나 자유함을 누리는 것이 삶의 본연일진대 또 소유에 착념하고 있다.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소유물 때문에 근심하는 일(憂所有)없이 사는 이는 몇이나 될까.
어느새 연구원내 숲은 초록으로 가득하다. 지난해 떨어진 갈색 밤송이와 올해 새로 자란 초록의 잎들이 함께 어울린 산책길이 숲속에 나 있다. 산책길 곳곳엔 작년에 열매를 맺은 밤송이가 제 몸을 썩혀 또 다른 역할을 하기 위해 뒹굴고 있다. 밤송이는 때에 따라 밤나무의 소유이기도 하고 대지(大地)의 소유이기도 한 것이다.
미미한 밤송이는 제 역할을 말없이 수행할 뿐 사람처럼 제 것이라 욕심내지도 않고 알리지도 않는다. 소유든 무소유든 물이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알맞은 때와 알맞은 장소에 재물과 권세와 명예가 머무른다면 이곳이야말로 아름다운 소유가 가득한 곳이 아닐까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