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산]합리성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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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산]합리성의 승리

[문화초대석]황정산 대전대 교수·시인

  • 승인 2010-06-06 13:32
  • 신문게재 2010-06-07 20면
  • 황정산 대전대 교수·시인황정산 대전대 교수·시인
6·2 지방 선거가 의외의 결과로 끝이 났다. 압도적으로 집권 여당이 이기리라는 예상을 깨고 야당이 크게 승리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많은 분석들이 내려지고 있다. 20·30대의 반란이라고도 하고 북풍이 역풍이 되었다고도 한다. 한쪽의 권력이 비대해지면 반작용이 생긴다는 '견제심리론'이나 소수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여론조사의 한계를 지적한 '침묵의 나선이론' 등이 얘기되기도 한다.

▲ 황정산 대전대 교수·시인
▲ 황정산 대전대 교수·시인
다 나름의 근거가 있는 지적들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번 지방선거의 의미를 다른 데서 찾고 싶다. 그것은 바로 합리성이다. 이번 선거의 결과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이유와 판단으로 투표를 한 데서 기인했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던 비합리적인 지역주의와 북풍이 힘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지역주의란 '주의'라는 말을 붙이기가 무색할 정도로 반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요약되는 그것은 지연, 혈연이라는 원초적 정서에 호소하는 가장 원시적인 통치수단이다. 개인의 이익과 효율성에 따라 자유로운 판단을 요구하는 근대적 인간관에 비추어보면 이는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것이기까지 하다. 만약에 경상도에 사는 가난한 노인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복지예산을 줄이려는 보수적 정권에게 표를 찍는다면 그것은 너무도 비합리적이다. 반대로 서울 강남의 부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합리적인 행위다.

북풍이란 인간의 공포감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또한 반이성적이다. 가상의 적이나 두려운 타자를 설정하고 강조함으로써 내부의 문제를 희석하고 권력에 복종하도록 하는 통치술은 과거에서부터 줄곧 있어왔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갈등과 대립을 통해 전쟁의 위협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평화와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안보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주 최근까지도 냉전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보수적인 기득권층은 이런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우리 사회 안의 불만을 잠재워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합리적이게도 평화를 갈망했다. 천안함 사건으로 북풍이 일어나면서 역설적이게도 지난 정권이 이루어놓은 화해와 공존의 노력이 훨씬 바람직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번 선거는 바로 이런 두 가지의 비이성적인 미신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아졌고 젊은 층일수록 과거의 비이성적인 지역주의나 북풍이라는 냉전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합리적 판단으로 투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나는 사실 젊은 층의 이런 합리성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요즘 대학생들은 학점과 스펙을 관리해서 취직을 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꿈꾸지 못한다. 자신의 이익과 안온한 삶을 포기하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이들의 합리적인 사고로 볼 때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돈키호테나 하는 짓이다. 또한 돈이 되지 않고 앞날을 암담하게 만들 게 분명한 예술 같은 것에 정열을 바치는 것은 정신 나간 행동일 뿐이다.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한마디로 낭만적 열정이 없어 보인다. 그들의 두뇌구조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잘 살까하는 냉정한 계산이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들에게 꿈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하고 쪼잔해졌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적 발언을 즐겨하는 한 가수는 우리 사회의 20대 젊은이들에게 '도무지 패기가 없는 놈들'이라고 욕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가수가 최근에 한 콘서트에서 그 젊은이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선거를 통해서 그들이 그들의 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젊은이들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가진 그 쪼잔한 합리성이 세상을 바꾼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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