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방자전]춘향을 사랑한 건 방자였다고?

  • 문화
  • 영화/비디오

[영화-방자전]춘향을 사랑한 건 방자였다고?

■ 방자전 감독: 김대우. 출연: 김주혁, 조여정, 류승범, 류현경.

  • 승인 2010-06-03 19:55
  • 신문게재 2010-06-04 12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
몽룡을 따라간 청풍각에서 기생의 딸 춘향에게 한 눈에 반해 버린 몸종 방자. 몽룡 또한 그녀를 눈여겨본다는 느낌에 마음을 접으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마음을 어찌 감출 수 있으랴. 춘향 역시 방자의 남자다움과 자상함에 흔들리고, 마침내 방자는 춘향을 품게 되는데.


방자, 출세했다. 21세기에 부활해 영화의 타이틀 롤을 꿰찼으니 보통 출세가 아니다. 그런데 이방자가 춘향이 신발 들고 뛰다 자빠지던 그 방자 맞는가. 단정하고 지적인 얼굴, 근육질 몸(김주혁 분), 게다가 요즘 여성들이 좋아한다는 ‘나쁜 남자’ 기질에, 사랑에 모든 걸 거는 ‘훈남’이기까지. 생김새도 허우대도 출세했다. 주인공에 썩 어울린다. 춘향이가 반할 만도 하다.

방자가 들려주는 사랑이야기에 오랜만에 실컷 웃었다. 원작대로라면 방자가 웃겼겠지만 이번엔 몽룡 때문이다. 시공을 초월해 뭇 여성들의 로망인 이몽룡이 지질이 ‘질투남’이라니. 낄낄거리고 웃다가 마 영감의 연애특강과 변학도의 변태 행각에 이르러선 뒤집어지고 말았다. 이 ‘한판 뒤집기’는 꽤 맛깔나다.

노출 수위도 높고 풍자와 해학도 질펀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힘은 캐릭터들이 살아있다는 점에 있다. 방자와 춘향, 몽룡, 향단, 월매, 변학도 등은 원작 ‘열녀춘향수절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재해석된 인물들은 파격적이며 발랄하다. 방자는 신분이 천한 것만 빼면 모든 게 완벽한 남자다(방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임을 감안하자).

재색을 겸비한 춘향은 사랑과 신분 모두를 손에 쥐기 위해 저울질 하는 현실적 여성. ‘폼생폼사’ 몽룡은 출세를 위해선 사랑도 이용하는 야비한 지략가다. 감독은 이들을 정확하게 배치하고 적확한 대사로 생동감을 부여한다. 고전적이라기보다 현대에 가까운 이 캐릭터들의 ‘화학작용’은 극에 세련된 맛을 더하고, 발칙한 상상력에 숨을 불어넣어 완성한다.

뼈대는 춘향을 진정 사랑한 사람은 방자이고, 춘향도 방자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다. 방자와 춘향, 몽룡이 서로 사랑하고 욕망하고 질투하는 고전판 ‘사랑과 야망’인 셈.

영화를 보면서 새삼 각본 연출을 맡은 김대우 감독의 역량이 궁금해졌다. 그가 정성껏 매만진 캐릭터 덕에 배우들은 맘껏 놀 수 있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의 각본을 쓴 걸 기억하는 사람도 ‘방자전’에서 쏟아지는 기막힌 대사엔 감탄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양반이 음란소설을 쓴다는 발칙한 발상으로 만든 ‘음란서생’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았지만, ‘방자전’에선 한 발 더 나아간다. 치밀한 구성력으로 이 전복의 드라마를 설득력 있게 꾸며놓는다. 방자는 그저 몽룡의 마음을 춘향에게 전하는 비둘기였을까. 몽룡은 왜 예쁜 색시 마다하고 춘향을 찾았을까. 춘향은 오매불망 몽룡만 기다렸을까. ‘열녀춘향수절가’에 온갖 대목에 의문부호를 갖다 붙인 이 영화는 웃음의 맥락에선 분명한 성취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춘향전’이 사랑하는 춘향을 온전히 얻지 못한 방자의 넋두리 쯤으로 넘어갈 때, 그 때의 멜로와 비장미는 관객에게 거북하다. 영화는 잔뜩 폼 잡고 있는데, 이미 터진 웃음보를 추스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흠은 덮고도 남을 만큼 재미있다. ‘방자전’은 정성껏 차린 한정식 같다. 고풍스런 한옥과 풍광 좋은 계곡, 너른 바위 등 영상미는 빼어나고 구도는 보기에 좋다. 배우들의 연기도 넘치지도 모라지도 않는 딱 필요한 만큼이다. 오달수의 마 영감 연기, 송새벽의 변학도는 당분간 머리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백석대·백석문화대, '2024 백석 사랑 나눔 대축제' 개최
  2. 한기대 생협, 전국 대학생 131명에 '간식 꾸러미' 제공
  3. 남서울대 ㈜티엔에이치텍, '2024년 창업 인큐베이팅 경진대회' 우수상 수상
  4. 단국대학교병원 단우회, (재)천안시복지재단 1000만원 후원
  5. 남서울대, 청주맹학교에 3D 촉지도 기증
  1. 1기 신도시 첫 선도지구 공개 임박…지방은 기대 반 우려 반
  2. 올해 대전 분양시장 지형도 도안신도시 변화
  3.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4.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연내 착공 눈앞.. 행정절차 마무리
  5. 대덕구보건소 라미경 팀장 행안부 민원봉사대상 수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 분양시장 변화바람… 도안신도시 나홀로 완판행진

대전 분양시장 변화바람… 도안신도시 나홀로 완판행진

올해 대전 분양시장 지형도가 도안신도시로 변화한 분위기다. 대다수 단지에서 미분양이 속출했는데, 유일하게 도안지구의 공급 물량만 완판 행렬을 이어가며 수요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업계는 하반기 일부 단지의 분양 선방으로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내년에 인건비와 원자잿값 상승,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의무화 등으로 인한 분양가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21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분양한 도안 2-2지구 힐스테이트 도안리버파크 2차 1·2순위 청약접수 결과, 총 1208세대(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1만3649건이 접..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대한민국 펜싱의 역사를 이어갈 원석을 찾기 위한 '2024 대전광역시장기 전국생활체육 펜싱대회'가 뜨거운 열기 속에 막을 내렸다. 시장배로 대회 몸집을 키운 이번 대회는 전국에서 모인 검객과 가족, 코치진, 펜싱 동호인, 시민 2200여 명이 움집, '펜싱의 메카' 대전의 위상을 알리며 전국 최대 펜싱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23~24일 대전대 맥센터에서 이틀간 열전을 벌인 이번 대회는 중도일보와 대전시체육회가 주최하고, 대전시펜싱협회가 주관한 대회는 올해 두 번째 대전에서 열리는 전국 펜싱 대회다. 개막식 주요 내빈으로는 이장우..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