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몽룡을 따라간 청풍각에서 기생의 딸 춘향에게 한 눈에 반해 버린 몸종 방자. 몽룡 또한 그녀를 눈여겨본다는 느낌에 마음을 접으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마음을 어찌 감출 수 있으랴. 춘향 역시 방자의 남자다움과 자상함에 흔들리고, 마침내 방자는 춘향을 품게 되는데.
방자, 출세했다. 21세기에 부활해 영화의 타이틀 롤을 꿰찼으니 보통 출세가 아니다. 그런데 이방자가 춘향이 신발 들고 뛰다 자빠지던 그 방자 맞는가. 단정하고 지적인 얼굴, 근육질 몸(김주혁 분), 게다가 요즘 여성들이 좋아한다는 ‘나쁜 남자’ 기질에, 사랑에 모든 걸 거는 ‘훈남’이기까지. 생김새도 허우대도 출세했다. 주인공에 썩 어울린다. 춘향이가 반할 만도 하다.
방자가 들려주는 사랑이야기에 오랜만에 실컷 웃었다. 원작대로라면 방자가 웃겼겠지만 이번엔 몽룡 때문이다. 시공을 초월해 뭇 여성들의 로망인 이몽룡이 지질이 ‘질투남’이라니. 낄낄거리고 웃다가 마 영감의 연애특강과 변학도의 변태 행각에 이르러선 뒤집어지고 말았다. 이 ‘한판 뒤집기’는 꽤 맛깔나다.
노출 수위도 높고 풍자와 해학도 질펀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힘은 캐릭터들이 살아있다는 점에 있다. 방자와 춘향, 몽룡, 향단, 월매, 변학도 등은 원작 ‘열녀춘향수절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재해석된 인물들은 파격적이며 발랄하다. 방자는 신분이 천한 것만 빼면 모든 게 완벽한 남자다(방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임을 감안하자).
재색을 겸비한 춘향은 사랑과 신분 모두를 손에 쥐기 위해 저울질 하는 현실적 여성. ‘폼생폼사’ 몽룡은 출세를 위해선 사랑도 이용하는 야비한 지략가다. 감독은 이들을 정확하게 배치하고 적확한 대사로 생동감을 부여한다. 고전적이라기보다 현대에 가까운 이 캐릭터들의 ‘화학작용’은 극에 세련된 맛을 더하고, 발칙한 상상력에 숨을 불어넣어 완성한다.
뼈대는 춘향을 진정 사랑한 사람은 방자이고, 춘향도 방자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다. 방자와 춘향, 몽룡이 서로 사랑하고 욕망하고 질투하는 고전판 ‘사랑과 야망’인 셈.
영화를 보면서 새삼 각본 연출을 맡은 김대우 감독의 역량이 궁금해졌다. 그가 정성껏 매만진 캐릭터 덕에 배우들은 맘껏 놀 수 있었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의 각본을 쓴 걸 기억하는 사람도 ‘방자전’에서 쏟아지는 기막힌 대사엔 감탄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양반이 음란소설을 쓴다는 발칙한 발상으로 만든 ‘음란서생’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았지만, ‘방자전’에선 한 발 더 나아간다. 치밀한 구성력으로 이 전복의 드라마를 설득력 있게 꾸며놓는다. 방자는 그저 몽룡의 마음을 춘향에게 전하는 비둘기였을까. 몽룡은 왜 예쁜 색시 마다하고 춘향을 찾았을까. 춘향은 오매불망 몽룡만 기다렸을까. ‘열녀춘향수절가’에 온갖 대목에 의문부호를 갖다 붙인 이 영화는 웃음의 맥락에선 분명한 성취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춘향전’이 사랑하는 춘향을 온전히 얻지 못한 방자의 넋두리 쯤으로 넘어갈 때, 그 때의 멜로와 비장미는 관객에게 거북하다. 영화는 잔뜩 폼 잡고 있는데, 이미 터진 웃음보를 추스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흠은 덮고도 남을 만큼 재미있다. ‘방자전’은 정성껏 차린 한정식 같다. 고풍스런 한옥과 풍광 좋은 계곡, 너른 바위 등 영상미는 빼어나고 구도는 보기에 좋다. 배우들의 연기도 넘치지도 모라지도 않는 딱 필요한 만큼이다. 오달수의 마 영감 연기, 송새벽의 변학도는 당분간 머리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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