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 생은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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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 생은 견딜 수 있다

■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장은진/문학동네)

  • 승인 2010-06-01 21:14
  • 신문게재 2010-06-02 12면
  • 유영미 한밭도서관 사서유영미 한밭도서관 사서

 작가 장은진이 보낸 따뜻한 편지.
 요즘 편지를 써 본 적이 있던가?

 오늘도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광고메일들을 지우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면서도 편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 없이 지나치던 하루하루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방정리를 하다가 맨 아래쪽 책상서랍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수많은 손편지들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정리해야지 마음을 먹고 부스럭거리면서 몇몇 글을 읽어 보았다. 오래전의 편지글들은 십대소녀의 감성과 고민을 담고 있기도 했고, 철없던 이십대의 꿈도 담겨있고,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담긴 친구의 글도 담겨있었다. 그 글들을 보며 잊고 있었던 나의 아련한 추억에 잠겨있자니 부끄럽기도 했지만 마음 한쪽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환하게 번지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라고 소설가 정한아가 말한 것처럼 슬프지만 행복한, 그래서 마음이 너무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속에 나오는 소설 ‘치약과 비누’의 내용이 무엇일까 궁금해지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분명 너무도 따뜻한 내용일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나는 허름한 배낭에 MP3와 소설책 한권을 넣고 집을 떠났다. 와조와 함께’

 이 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내(지훈이)가 와조(할아버지를 안내하던 맹인견)가 사고를 당해 맹견이 되어버린 후, 와조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고 그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삼년동안 눈 먼 개 와조를 데리고 모텔을 전전하며 여행을 다닌 그와 그가 만난 751명의 사람들(물론 그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그에게 주소를 적어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의 ‘편지’안에 담겨있다. 그 ‘편지’의 진정한 의미들은 이 책을 다 읽고나서야 비로소 온전히 마음에 닿게 될 것이다.

 ‘편지를 받을 사람이 있고 또 답장을 보내줄 사람이 있다면, 생은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단 한 사람뿐이라 하더라도.’ -p.277

 소설은 혼자 떠나온 여행에서 나를 발견하려는 모습과, 편지를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모습을 동시에 전해주고 있다. 예상치 못한 놀라운 반전과 따뜻한 결말. 편지라는 소재로 모두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었던 작가의 배려가 느껴졌다. 어쩌면 작가도 누구가의 편지로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전에도, 여행 중에도 그리고 여행 후에도 나는 결코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결국 나는 눈물을 쏟고 만다.’-p.275

 세상을 향해 편지의 다른 이름인 소설을 쓰는 작가, 얼마나 치열한 외로움일까? 답장을 염두해 두지 않고 편지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며 편지를 쓰듯 나를 포함한 세상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편지. 그래서 나는 그녀의 편지를 받고 이렇게 답장을 쓰게 된다.

 ‘오늘, 아무도 나에게 편지하지 않았다.’-p.39

 처음 봤을 때 피식 웃게 했던 이 소설의 제목은 책을 덮을 무렵에는 무한한 감동의 한마디가 되어버렸다. 너무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이 한마디 말은 한참을 생각에 잠기게 하는 가장 감명 깊은 구절이 되어 버렸다.

 ‘내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하루가 존재했다는 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내게 편지는 일기 같은 것이다. 다만 그 하루가 내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부쳐진다는 것뿐이다. 다만 그 하루가 내게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부쳐진다는 것뿐이다. 일기는 독점되는 것이지만 편지는 공유되는 것이다. 일기는 홀로 보관하는 것이지만 편지는 둘 이상이 보관하는 것이다.’ -p.20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편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낯선 누군가에게 나를 내보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할 만큼 세상살이에 영악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편지라는 것은 나 자신을 온전히 내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라는 존재를 전하는 세상에 대한 인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오랫동안 써보지 않은 손 편지를 써보고 싶어졌다. 지금의 내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딘가의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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